'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2017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앞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발표 및 환수운동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2017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앞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발표 및 환수운동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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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 편집기획팀장] "30대 재벌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이 950조에 달한다. 재벌 곳간을 열어 당장 10% 정도만 '재난생계소득 기금'으로 출연한다면 국가 재난 상황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 될 것이다"


지난 3월 1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울산지역본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그동안 재벌독점 경제체제에서 누려 왔던 온갖 특혜와 정경유착, 노동자 쥐어짜기, 원하청업체 불공정거래,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성장해 온 재벌이 스스로 거듭날 기회다. 현대자동차 50억, 현대중공업 12억 등 기부는 고무적이지만 너무나 부족하다"고 했다. 앞서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2016년에는 금속노조 울산지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등과 공동으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및 재벌개혁운동 선언'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950조 사내유보금 10%를 기금으로"
노동계·시민사회단체 등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벌여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상위 대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은 정치권과 노동계의 단골소재다. 경기가 어려울 때, 나라 살림이 어려울때,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등이 어려울 때, 재벌개혁과 재벌을 향한 사회적책임이 요구될 때마다 나왔다. 비근한 예로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은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2017년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800조원을 넘어섰다. 부당하게 축적한 사내유보금을 환수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사내유보금을 "재벌이 지금껏 빼앗아온 노동자 민중 생존권이며, 원래 재벌 것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정치권에서도 사내유보금을 보는 시각은 뚜렷하게 갈려왔다. 진보진영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또는 기금성격의 갹출을 주장해왔고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반대해왔다. 사내유보금 논란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추미애 현 법무부 장관이다. 추 장관은 의원시절이던 2012년 '재벌 과다 사내유보금 어떻게 쓸 것인가? 사회적책임준비금 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와 활용을 주장해 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2016년에도 "10대 기업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이 550조원이 넘는데 낙수효과만으로 경제가 살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이던 2015년 "대기업이 사내유보금 710조원의 1%만 줄여도 주요 일자리 30만개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추 장관은 19대 국회이던 2015년 10월에는 사내유보금 일부를 사회적책임준비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법안(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내국법인이 각 사업연도에 청년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상생을 위한 하청업체 지원 등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사회적책임준비금'을 적립한 경우에는, 일정 금액의 범위에서 해당 사업연도의 소득금액을 계산할 때 이를 손금에 산입토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추 장관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현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도 참여했다. 이 원내대표도 2013년에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담은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이들 개정안은 그러나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사내유보금 과세했다 부작용 크자 DJ정부시절 폐지됐는데
유보금 폭증하자 진보진영서 과세·갹출 등 주장 이어져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적정유보초과소득 과세'로 불린다. 1991년 도입돼 1993년, 1994년, 1998년의 개정을 거쳐 2001년 폐지됐다. 자기자본총액 100억 이상의 비상장법인과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비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초과유보소득에 15%의 추가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비상장법인이 사내유보를 통해 의도적으로 배당을 회피해 주주의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적으로 배당하는 상장법인의 주주와의 과세 불공평을 해결하려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시행과정에서 기업 배당정책에 정부가 일괄 개입하는데 대한 문제가 있고 배당촉진에 별 효과가 없었다. 2001년 8월 당정(민주당-김대중정부)의 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세제상 불이익조항이라고 판단해 폐지를 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기업재무구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진보진영이 사내유보금을 재벌이 다른 곳에 투자하지 않으려고 쌓아놓은 곳간이라고 보고 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이런 개념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사내유보금의 공식 정의는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의 합계 또는 이익잉여금으로만 계산한다. 회계정의상 잉여금은 건물, 토지, 설비투자 등의 투자금이 포함된다. 투자의 증가에도 재무상태표상 유보금은 변화가 없거나 증가할 수 있다.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사내유보금은 세금과 배당을 통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기업 내부에 남아 있는 잉여금이다. 사내유보금의 증가가 투자활동의 회피라는 배타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벌이 쌓아놓은 현금?…건물·토지·설비투자 등 투자금 들어가
각국서 돈풀고 감세하고 제로금리하는데 재벌에 준조세 걷겠다

이 때문에 재계와 보수진영에서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결국 법인세율의 증가여서 기업 환경의 악화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법인의 해외이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론적 한계와 시행 결과를 통해 나타난문제점들로 인해 폐지된 제도를 이론적 근거나 실증적인 분석 없이 무관한 취지로 재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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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내유보금은 1990년 26조원에 불과하던 것이 현재는 900조원대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속칭 재벌 곳간에 쌓여있는 900조원이면 올해 국가예산(512조원)보다 많다. 10%를 기금으로 내놓으면 80조원에서 90조원 수준인데 이번 추경(11조7천억원)의 8배에 이른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경기를 살리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를 살리는데 필요한 '매력적인 돈'이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가 경기방어를 위해 제로 금리로 돈을 풀고 감세를 비롯한 전방위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노동계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때만 되면 나오는 "재벌이여 곳간을 열어라"라는 요구는 터무니없이 느껴진다. 오히려 기업들을 향해 "어려울 때일수록 그간 비축해 놓은 현금을 활용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와 같은 구조조정을 최소화해달라"고 하는 것이 공감을 얻을 것이다.


이경호 편집기획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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