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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다룬 영화도 외모평가…여성·페미니즘 지우는 영화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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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맞선 여성대법관 실화 담은 영화 포스터 문구 논란
해외 '리더 변호사' → 국내 '러블리한 날'
전문가, ‘젠더이슈’ 논란 피하려는 모습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홍보 포스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홍보 포스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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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가연 인턴기자] 성차별에 맞서는 내용을 담은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포스터 문구가 국내 홍보 과정에서 본래 의미를 없애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 관객들은 해당 문구가 여성을 대상화 한 여성혐오적 문구이며 영화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영화 마케팅에서 여성·성차별·페미니즘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배급사는 영화의 의미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며 사과했다. 전문가는 일부 관객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젠더이슈’라는 차별성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의 두 번째 여성대법관으로 지명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실제 삶을 그렸다. 긴즈버그는 모든 차별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I dissent)고 외쳐온 인물로, 성별에 따른 법적 차별을 인식시키려 남성 역차별에 대한 변호를 맡은 바 있다.


해당 영화의 마케팅 문구를 두고, 여성을 업적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하는 부적절한 홍보 문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CGV 아트하우스는 지난달 28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포스터를 공개했다. 기존의 해외 포스터에 나타난 ‘리더 변호사’(Leader Lawyer), ‘정의’(Justice) 등의 단어들은 국내 포스터에서 ‘독보적인 스타일’, ‘진정한 힙스터’, ‘시대의 아이콘’, ‘핵인싸’, ‘데일리룩’ 등의 문구가 됐다.


또, ‘영웅적인’(Heroic), ‘영감을 주는’(Inspiring), ‘펠리시티 존스는 훌륭하다’ 등의 문구는 번역을 거치며 ‘러블리한 날’, ‘포멀한 날’, ‘꾸.안.꾸한 날’(꾸민듯 안 꾸민 듯)으로 바뀌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 컷.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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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 누리꾼은 “여성 주인공에게만 ‘러블리’ 등 직업과 전혀 상관없는 수식어가 붙는다”면서 “여성 변호인도 변호인일 뿐이다. 그에 맞는 단어를 써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누리꾼 또한 “영화나 주인공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이 홍보물을 만드냐”면서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간 쌓아올린 대단한 업적들을 다 지워버리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CGV 아트하우스 측은 게시물을 삭제한 후, 다음날인 29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했다. 아트하우스 측은 “해외 이미지를 활용해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의 의미를 본의아니게 훼손했다”라면서 “질책과 고견 감사드리며, 영화의 의미에 맞는 적절한 콘텐츠 구성을 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미국 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대단한 사람인데도 여성이라 외모평가가 우선되는 게 화가 난다”, “성차별을 다룬 영화에서 포스터를 여성혐오적 메시지로 바꾸다니”, “긴즈버그가 미국에서 힙한 인물로 떠올랐다고 해도 저런 의미로 힙한게 아닌데 이해를 잘 못 한 듯”, “한국 포스터만 보면 대법관이 아니라 쇼핑몰 홍보 사진 같다” 등의 비판을 이어갔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컷/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스틸컷/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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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계에서 성차별·페미니즘을 지워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원제가 ‘20세기 여성들’(20th Century Women)이었으나 ‘여성’이라는 단어가 지워졌다.


실존인물인 미국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성차별을 다룬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또한 원제 ‘성별의 대결’(Battle of the Sexes)에서 ‘성차별’의 뉘앙스를 완전히 지웠다. 앞서 언급한 ‘세상을 바꾼 변호인’ 역시 원제 ‘성별에 근거하여’(On the Basis of Sex)와는 다른 제목을 갖게 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알라딘’은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담아 여성관객에게 큰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디즈니 코리아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자스민의 사진을 올리며 “예쁨주의보 제대로 터짐. 그래서 메이크업은 어떻게 하는건데?”라는 홍보 문구를 내걸어 누리꾼의 뭇매를 맞았다.


또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발명가이자 배우 헤디 라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밤쉘’은 지난 2017년 개봉했을 당시 “이 얼굴 실화? 공대 아름이의 원조”라는 홍보문구를 사용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 '알라딘' 스틸 컷.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알라딘' 스틸 컷.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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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영화가 성차별과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이슈를 피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의미에서 ‘여성을 지운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봤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남녀를 떠나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말의 방식이 있다”라면서 “그것이 가장 핵심적이고 차별점이 생기는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성을 내세워 갈등을 피해가고자 하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황 평론가는 “정확한 소구집단을 찾아 ‘이게 젠더이슈를 다룬다’는 것을 홍보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라며 “일단은 마구 쏟아질 비난을 피하고 싶고, 중립적인 상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선입견 없는 상태로 접근하고 싶다는 게 목적이겠으나 이 자체가 굉장히 나이브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소구집단이란 마케팅 용어로 문자, 음성, 영상 등 메시지를 전달해 원하는 반응을 얻고자 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어 황 평론가는 “제목도 번역을 하자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로 성차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이 사람이 여성 변호인이라서가 아니라 남녀를 떠나서 얼마나 훌륭한 위인인가’를 얘기할 수 있는 건 싸움이 관철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라며 “선입견을 끊임없이 돌파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선입견은 계속 남아있게 된다. 논쟁을 계속 하면서 상대가 세계적인 흐름에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관철시켜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가연 인턴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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