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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김구·안창호·김원봉…독립운동가 4人의 달랐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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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백범 김구(왼쪽)와 약산 김원봉

백범 김구(왼쪽)와 약산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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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그들의 생활은 밝음과 어둠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사진 찍기를 아주 좋아했으며, 언제나 이번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의 작가 님 웨일즈는 저서 '아리랑'에서 의열단의 모습을 이처럼 묘사했다. 그의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 남편인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와 함께 1930년대 격동기 중국의 혁명가들을 만나 저서로 남겼다. 이 중 옌안에서 활동한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산을 취재해 남긴 '아리랑'에는 의열단의 일상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이 의열단을 창단한 인물이 약산 김원봉(1898~1958)이다. '우리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강도 일본과의 투쟁을 단 하루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던 김원봉은 유혈 투쟁을 신봉했다.


그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인물이기도 하다.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를 놓고 대한민국은 둘로 나뉘었다. 보수 진영은 북한의 정치가이자 남침을 주도한 사회주의자인 김원봉에게 유공자 서훈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란 얘기다. 반면 진보 진영은 의열단을 창단한 김원봉에게 조선총독부가 '빨갱이' 프레임을 덧씌웠다며 반박했다.

밀양 출신인 김원봉은 위장에 능한 데다 중국어와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해 일본 경찰을 농락하곤 했다.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투쟁에 임했다. 하지만 그런 김원봉은 유독 대중의 관심 밖에서 저평가 돼왔다.


하지만 2015년과 2016년 잇따라 개봉한 영화 '암살'과 '밀정'으로 뒤늦게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인 '황옥경부폭탄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의열단의 계획은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밀반입해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김원봉의 지휘 아래 의열단은 1920년 밀양경찰서 투탄사건과 부산경찰서 투탄사건, 1921년 조선총독부 투탄사건, 1922년 일본육군대장 암살미수사건 등 거사를 이어갔다.


이후 김원봉은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난징에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지냈다. 광복군 부사령관,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맡았고 광복 직후 귀국했다. 그러나 1946년 남조선민전 공동의장에 취임하고 월북하면서 인생의 경로가 달라졌다.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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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김원봉을 작가 김문은 무덤 속에서 불러낸다. 기자 출신으로 500명 넘는 인물들을 심층 인터뷰해왔던 작가는 상상 속에서 김원봉에게 대화를 건다.


김원봉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33년간 서당을 다니다 보통학교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교사가 '천황폐하의 은덕으로 자랑스러운 일본식 교육을 받게 됐으니 감사히 여기라'고 떠들더군요. 1911년 4월29일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행사가 거행됐습니다. 강제로 일장기를 나눠주더군요. 짜증이 치밀어 화장실에 처박아버렸습니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고 결국 자퇴해야만 했어요."


작가는 '적기(赤旗), 붉은 깃발이라…. 혹시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관련이 있나요?'라는 질문도 던진다. 김원봉은 "글쎄요. 난 그냥 빨강색이 유혈투쟁에 어울리는 색이라서 마음에 들었는데 말입니다"라고 답한다.


작가가 무덤 속에서 불러낸 인물은 김원봉뿐만이 아니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삶의 배경이나 추구한 독립운동의 방법도 모두 달랐던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상하이 임시정부’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 김구는 초대 경무국장, 안창호는 내무총장이었다. 김원봉은 의열단장으로 무력투쟁을 통해 임시정부를 도왔다.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인생을 던진 4인과의 가상 대화집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들녘)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니다. 치열한 역사 고증을 거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끄집어낸다. 인왕산 산등성이에서 만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회한 섞인 노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승만은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위임통치청원서'를 독립노선의 극명한 차이로 설명한다. 이를 계기로 단재 신채호와 갈등을 겪었고, 반대파의 탄핵 위협에 직면했다.


작가는 오영섭 교수의 논문을 인용, '청원서는 국제법에 정통한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뒤 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의 검토를 거쳐 신한청년당 파리강화회의 대표 김규식을 통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됐다'고 전한다.


이승만은 작가의 펜을 빌려 1902년 감옥에서 기독교에 귀의했던 사연,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갔던 얘기,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조선의 독립을 호소했던 과정 등을 털어놓는다. 또 "안창호가 달변가였지만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결국 민주적인 독립운동을 함께하기에 맞지 않았다"는 식으로 당시 두 사람의 노선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16세 때 결혼한 이승만의 첫 부인이 임오군란 때 목숨을 잃은 궁녀의 딸이었다는 사실도 책에 등장한다. 이 첫 부인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잃은 뒤 이승만과 멀어진다. 그리고 6·25 전쟁 때 공산군의 벽보를 뜯다가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승만은 58세 때인 1933년 제네바에서 당시 33세였던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 청혼하고 새롭게 결혼식을 올렸다.


효창공원에서 만난 김구는 안중근 지사 집안과 3대째 인연을 맺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안중근 지사의 아버지인 '안 진사' 안태훈이 동학농민전쟁 당시 동학군 토벌대장을 맡아 창수(백범의 본명)와 마주했다는 내용이다. 동학군 패배 직후 백범은 안 진사와 맺은 밀약에 따라 안중근 집안에 몸을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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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인 작가는 4인의 인물들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다가간다. 조심스럽게 입장을 경청하면서 의문이 나면 반드시 질문한다. 책에는 작가의 속내가 투영돼 있다.


책 제목인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는 1948년 3월12일 장덕수 암살사건 8차 공판에서 법정 증인으로 나온 김구가 직업이 무엇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재미다. 저자의 글 솜씨는 독한 양념 맛 없이도 술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작가는 1988년 서울신문에 입사한 뒤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편집위원, 선임기자 등을 지낸 뒤 2014년 퇴직했다. 현재 제주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하면서 신문과 잡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들녘 펴냄/ 327쪽/ 1만 4800원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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