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그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김연철 통일부 장관 등 5개 부처 장관을 임명한 걸 두고 하는 이야기다.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끓어올랐지만 이전에도 밀어붙이곤 했으니 말이다. 뜻이 맞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것은 이해가 간다. 이미 두 명의 장관 후보가 낙마한 마당에 더 밀릴 수 없다는 생각도 작용했으리란 짐작도 가능하다. 그래도 거듭되는 정부여당의 '기차는 간다'식 행태에서 위험한 징후를 본다.
'피그스만 침공사건'이란 게 있다. 1961년 초 미군이 후원하는 쿠바 출신 반카스트로 무장세력이 쿠바를 '침공'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본 사건이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43세의 젊고 매력적인 외모에 명문 하버드대 출신, 전쟁 영웅인 그는 워싱턴 정가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와 참모들이 턱 밑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쿠바 공산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집권 3개월 만에 기획한 것이 이 사건의 실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 군부와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업은 쿠바 망명객 1400여명은 쿠바의 피그스만에 상륙한 지 이틀 만에 진압당했다. 반카스트로 세력이 상륙하면 쿠바인들이 가세할 것이란 당초 예상이 어긋났던 점이 가장 컸다. 그 결과 미국은 포로의 몸값으로 5000만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등 막대한 유ㆍ무형의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문제는 도무지 성사 가능성이 희박했던 이 작전이 어떻게 이렇다 할 반대 없이 추진됐는가 하는 점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9권에 따르면 미국 예일대 심리학 교수 어빙 재니스는 이 사례를 파고들어 '집단사고(group thinking)'란 개념을 도출했다.
"정책결정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호감과 단결심이 클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이 커진다. 이러한 집단사고는 집단 외부를 향해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취하게 만든다."
당시 영국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비유됐던, 케네디와 그의 실세 참모들은 영민했지만 같은 무리였다. 이들이 '근친상간적 자기도취'에 빠져 혹은 '온건파'로 찍힐까봐 무리한 작전을 강행했던 것이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쓴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카스 R 선스타인ㆍ후마니타스)'에는 재니스 교수의 진단이 나온다. 집단 결속력이 강한 경우, 집단의 정책 결정에 전문가의 자문이나 외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지도자들이 열린 토론과 비판적 평가를 장려하지 않을 경우, 구성원들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신념이 서로 비슷한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가 필요하다. 가톨릭에서 성인(聖人)을 추대할 때 해당 인물의 행적과 품성을 검증하기 위해 비판을 하도록 한 인물을 가리킨다. 선의와 확신, 만장일치가 결과의 성공이나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의사결정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런 의도적이고 의무적인 '악역'이 필요하다.
"박영선ㆍ김연철 후보의 장관 임명을 재고해봐야 합니다." "조현옥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에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청와대 내에서 이런 제언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일사불란보다는 누군가 다른 방향을 보고,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바람직한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작전에 대해 (언론이) 더 많이 썼더라면 우리가 그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거요." 강 교수의 책에 실린, 케네디가 피그스만 침공 실패 몇 주 후 한 언론인에게 했다는 후회다. 후회는 말 그대로 항상 늦다. 청와대에 '이견 담당 수석'이라도 신설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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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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