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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짝퉁"…철판 까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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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최근 인천항의 한 부두. 야적장에 중국산 H형강이 가득했다.

두 대의 지게차는 층층이 쌓인 H형강을 쉴 새 없이 트럭에 싣고 있었다. 이날 작은 부두에 쌓인 H형강만 5만t가량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이달 초 부터 보름도 안 되는 사이 H형강 수십만 t이 유통됐다"며 "문제는 이들 중국산 철강재가 원산지는 물론 품질 규격 등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아 국내 유통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가 늘어난 중국산 수입 철강재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품질의 값싼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 유통시장을 교란하면서 가격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제 원재료 가격 하락과 중국발 공급 과잉 등으로 철강재 수입이 증가하면서 철강재 가격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전기료 인상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분 이상의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하지만 수입재 대응으로 인해 가격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건설, 조선, 자동차 등 철강 전방산업 부진으로 가격이 저렴한 철강재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철강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중국산 철강재 수입 최대, 내수 교란한다= 23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1228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7%가 늘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였던 2008년의 1431만t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면 연말에는 이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1월 한 달간 철강재 수입량은 187만t으로 전년 동기보다 6.3% 증가해 13개월 연속 지난해 동기보다 수입량이 늘어났다.

이 중 중국산은 작년보다 22.8% 증가해 전체 수입 철강재의 59.4%를 차지했고 일본산은 작년보다 15.2% 줄어 3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대부분 품목의 수입이 늘어난 가운데 봉강과 컬러강판의 증가세가 각각 62.2%와 27.8%로 두드러졌다.

대표적 수입품목인 보통강 열연강판의 지난달 평균 수입단가는 546달러로 작년보다 6.3% 떨어지며 33개월째 하락세를 지속했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2002년 미국이 전 세계 철강사를 상대로 철강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할 당시 수입 철강재 점유율은 30% 수준에 불과했다"며 "주요 철강생산국 중에서 자국시장의 수입 철강재 점유율이 35%를 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철강업계는 생존 불능 상태에 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산 짝퉁, 우리 생명 위협한다= 최근 중국산 부적합 철강재가 국산으로 둔갑해 국내에 유통되면서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저가 중국산 철강재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와 울산 물탱크 폭발 사고 등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의 경우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원인 중 하나는 중국산 짝퉁 철강재 사용이었다.

또 지난해 7월 울산 삼성정밀화학 부지 내 폴리실리콘 생산공장 물탱크 사고의 원인 중 하나도 저가 중국산 철강재 사용이었다. 물탱크 이음 공사를 맡은 하도급 협력업체는 개당 550원짜리 고장력 볼트 대신 260원짜리 중국산 볼트를 사용했다.

더구나 중국산 짝퉁 철강재는 원산지를 속인 채 판매돼 상대적으로 감리가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 소규모 빌라 공사나 공장 건축 현장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관세청은 지난 6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원산지 표시 실태를 단속하고 20개 업체, 997억원 상당의 위반사례를 적발했다. 중국산 열연강판의 원산지를 처음부터 표시하지 않거나 단순가공 후 원산지 표시 없이 판매한 것이 문제였다. 또 아연 도금 강판에 부착된 원산지 표시 라벨을 제거한 뒤 새로운 상표를 부착한 경우도 발견됐다.

중국산 H형강은 원산지 표시를 손상시키거나 떨어지기 쉬운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한 사례도 적발됐다.

업계 관계자는 "롤마크가 위조된 중국산 부적합 철강재가 국산으로 둔갑한 채 국내에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국민이 위험에 방치돼 있다"며 "개별 철강업체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의 인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철강업계, 공동으로 중국산 철강재 대처한다= 중국산 철강재 문제는 국내 철강업계의 공통된 현안이다. 이에 따라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동부제철, 세아제강 등 국내 철강업계는 저가 중국산 철강재 퇴출에 나섰다.

이들 철강사는 지난 9월24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관에서 열린 '2014 국제 철강 및 비금속산업전'에 참가해 중국산 부적합 철강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번 전시회는 포스코, 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 세아제강, 세아베스틸, 고려제강, TCC동양, 일진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이 함께했다.

이후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산 철강으로부터 내수시장을 지키기 위해 부적합 철강재 단속 시스템 도입 등의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비규격 중국산 등 부적합 철강재를 유통시장에서 걸러내기 위한 스마트폰 기반의 정품인증 시스템 '큐리얼(QReal)'을 도입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지난 9월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H형강에 대해 반덤핑 제소장을 제출했다. 반덤핑 제소는 해외 수출국이 자국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수출해 수입국 산업이 피해를 입을 때 수입국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또 현대제철과 대한제강은 자사의 '롤마크(현대제철은 KHS, 대한제강은 KDS)'로 위조된 중국산 철근을 각각 2000t씩 수입, 유통한 혐의로 한 철강재 수입 유통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오일환 철강협회 부회장은 "중국산 수입 증가는 국내 철강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며 "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유입은 국내 철강시장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 중국과의 공정한 철강무역 질서 확립과 건전한 철강 소비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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