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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추석‥따뜻한 대화 '실종' 스마트폰만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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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추석 차례상 앞 풍속도...차례-음식 대폭 간소화...'명절 처가살이'도 신풍속...갈수록 썰렁해지는 차례상 앞, 친척들 모여 스마트폰만 만지작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대구에서 추석 차례를 지낸 정모씨(61)네는 매년 추석이 되면 큰댁에 모든 친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다음 작은집으로 이동해 또 차례를 지내던 전통이 올해부터 깨졌다. 큰댁에 모이지 않고 각자 차례를 지내기로 한 것이다. 정 씨는 "사촌들이 전부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답게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서로 바쁘고 또 성가시다 보니 각자 지내게 됐다"고 말했다.

충청도 고향 집에서 차례를 지낸 김모씨(40)네 집은 올해 추석 때부터 차례 음식 중 가장 손길이 많이 가는 송편을 집에서 만들지 않고 떡집에서 구입했다. 김 씨는 "번거롭고 오래 걸리긴 해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끼리 서로 이야기도 나눠가면서 송편 빚는 재미가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워낙 다들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사서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직장인 김모(28)씨네 집도 송편은 떡집에서 사오고, 부침전류는 며느리 세 명이 각자 하나씩 맡아서 미리 해오는 등 음식 준비를 최대한 간단히 하는 방법으로 일거리를 줄였다.

'명절 시집살이'가 아닌 '명절 처가살이'도 요즘 새로운 풍속이다. 결혼 2년차 새댁 김모(32)씨는 결혼 후 두 번째 맞는 추석 연휴를 친정에서 지냈다. 시부모님이 동유럽으로 여행을 갔기 때문.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난 것은 시부모님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김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남편은 길이 막히지 않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왕복 8시간 운전을 해야 했고 본가가 아닌 처가에서 다소 불편한 명절을 보내야 했다.

추석 등 명절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추석의 경우 휘영청 떠 오른 둥근달을 바라보며 오손도손 모여 앉아 송편을 빚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한잔 술을 벗삼아 그동안 살아온 애환을 얘기하며 서로를 달래고 힘을 얻어 다시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달려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전통의 씨족ㆍ마을 공동체의 해체와 사회 전반적인 핵가족화ㆍ개인화 등 사회 구조적 변화와 경기 침체ㆍ청년 실업 등은 이제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마저 원래의 의미를 바꿔놓고 있다.
우선 추석을 지내는 방법이 대폭 간소화됐다. 집안끼리 모이는 일이 사라지고 음식 장만도 시중 제품을 사다 쓰는 가정들이 많아졌다. 아예 추석이 '사라진' 가정들도 많다. 30대 직장인 이영현씨는 올 추석에 아예 온 가족이 큰 집에 가지 않고 함께 1박2일로 흑산도 여행을 갔다 왔다. 차례는 부모님이 남동생과 함께 성묘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씨가 탄 배는 추석을 이용한 가족 동반 여행객들로 만선이었다. 이씨는 "긴 연휴를 이용해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 좋았다. 앞으로도 명절을 이용해 가족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20대 직장인 박 모씨도 이번 추석 때 할아버지댁에 아예 안 내려갔다. 대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실컷 수다를 떨었다. 박 씨는 "쉬고 싶었고, 요즘엔 시골에 가도 친척들과 별로 친하지도 않아서 재미가 없고 같이 놀만한 거리도 없다"고 말했다.

모인 친척들의 분위기도 이전과 달리 서먹서먹한 집들이 많다. 대화나 윷놀이ㆍ화투 등 놀이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신혼 초인 30대 직장인 조 모씨는 결혼 후 첫 추석이라 내심 긴장했지만 다들 대화는 나누지 않고 서로 스마트폰만 붙잡고 노는 분위기에 맥이 풀렸다. 간혹 SNS 커뮤니티에 올려 놓은 사진을 돌려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함께 하는 게 고작이었다. 조씨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는지 추석 전날 오후와 당일 날 오전에는 접속자가 폭주해서 인기 게임은 접속도 잘 안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울산이 고향인 이모(30)씨는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 탓에 친척들 중에 취업 준비생이 많다 보니 썰렁한 추석을 경험했다. 이씨는 "사촌들 중에 고시 준비생이 3명이나 있어 친척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대화를 잘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그러다 보니 할머니 댁에 모여 있는 시간도 줄어서 다들 차례를 지내자마자 일찍 자리를 떴다"고 말했다.

서울 직장인 김모씨는 추석 제사상에 생선을 놓는 것 때문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의견이 갈려 어색해진 분위기를 경험했다. 친척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염두에 두고 "제삿상에 생선을 올리지 말자"고 주장했고, 나이든 어르신들은 "그래도 법도가 있는데 어떻게 안 올리냐"며 맞섰다. 양측은 일본 원전 오염수 확산을 두고 안전하냐 마냐 등을 두고 갑론을박을 계속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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