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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의 X-파일]다르빗슈:일본야구 독재자의 미국 침공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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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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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8일 삿포로돔. 한 선수만을 위한 입단식이 열렸다. 그해 고교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선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였다. 니혼햄 파이터스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진출을 알렸다. 196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에 매료된 니혼햄은 그가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다르빗슈의 견해는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도후쿠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다르빗슈라고 합니다. 제 특기는 변화구입니다. 일곱에서 여덟 가지 종류의 변화구를 실전에서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런 손재주가 제 가장 큰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프로야구의 수준 높은 타자들을 상대로도 제 변화구가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카다 시게루 단장(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단장), 트레이 힐먼 감독(현 LA 다저스 벤치코치)을 비롯한 니혼햄 구단수뇌부는 새내기의 발언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들이 다르빗슈에게 기대한 건 오로지 강속구였다.

다르빗슈는 프로입단 이후 순탄한 길을 걸었다. 데뷔 첫 해였던 2005년 5승을 올렸고 이듬해 12승(5패)을 따냈다. 부진과 거리가 먼 성적에도 사토 요시노리 투수코치(현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코치)는 주문을 끊이지 않았다.

“직구에 자신감을 가지고 던져라.”
사토 코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다르빗슈는 변화구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린 건 당연지사. 2006년 그는 볼넷 64개를 허용했다. 타자들의 게스히팅에 말려들어 적잖은 장타를 내주기도 했다. 그해 피홈런은 12개였다. 사토 코치는 최고구속 153km에 이르는 직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장기인 변화구가 승부구로서 빛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포수 츠루오카 신야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2006시즌 중반부터 전담포수를 맡았는데 다르빗슈에게 직구에 대한 자신감을 끊임없이 북돋아줬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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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바람대로 다르빗슈는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결실을 거둬들였다. 10월 13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클라이막스 시리즈 2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 8이닝 1실점 11탈삼진을 기록했다. 21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저팬시리즈 1차전에선 패전투수가 됐지만 6이닝 3실점의 퀄리티스타트를 선보였다. 다르빗슈는 이어진 5차전에서 7.1이닝 6탈삼진 1실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 덕에 니혼햄은 44년 만에 저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포스트시즌 내내 다르빗슈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직구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그 사이 슬라이더, 슬러브, 스플리터, 슬로커브 등의 위력은 크게 배가됐다. 이후 5년의 장기 독재 체제를 예고한 순간이었다.

마운드 위의 독재자

다르빗슈는 5년 동안 1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025.1이닝을 소화했다. 경기당 평균 8.01이닝. 내용도 훌륭하다. 106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76승을 올렸다. 여기에는 50차례의 완투와 15차례의 완봉승이 포함돼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었던 셈이다.

다르빗슈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단 이야기는 2008년부터 있었다. 일본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논의는 대개 선수가 진출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을 때부터 시작된다. 다르빗슈의 경우는 달랐다. 니혼햄이 먼저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는 2006년 겨울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이적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마쓰자카를 점찍은 보스턴 구단의 포스팅 응찰액은 무려 5111만 달러였다. 일본 프로구단들 특히 퍼시픽리그 구단들에게 이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단들이 재정 문제로 고민에 휩싸였던 까닭이다. 간판선수를 내주고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챙기는 건 자연스레 구단의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 방법으로 떠올랐다. 니혼햄에겐 더더욱 그러했다.

최근의 후지카와 규지(시카고 컵스), 나카지마 히로유키(오클랜드 어슬레틱스)까지 일본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는 총 51명이다. 아마추어와 사회인야구(신일본석유)에서 각각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맥 스즈키와 다자와 준이치를 제외하면 그 수는 49명으로 줄어든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미국 진출 수년 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다르빗슈만큼은 예외였다. 그에겐 일본 프로야구 이력에 아쉬움이 있었다. 니혼햄은 다르빗슈가 2년차였던 2006년을 끝으로 저팬시리즈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6년 전 영광을 일군 주축 멤버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 신조 츠요시(은퇴), 모리모토 히초리(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페르난도 세귀뇰(요미우리 스카우트) 등 베테랑들이었다. 다르빗슈는 자신이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2007년 이후 우승반지를 추가하고 싶어 했다. 그의 역투와 타선의 조직력에 힘입어 니혼햄은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 저팬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주니치와 요미우리에 각각 패해 우승컵을 차지하진 못했다. 이후 니혼햄은 우승을 위한 전력 보강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시기가 가까워진 다르빗슈는 2010년 겨울을 기점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시선을 둔 곳은 태평양 너머의 미국이었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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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증가

다르빗슈는 2010시즌 뒤 구속 증가에 초점을 뒀다. 첫 시도는 아니었다. 이미 2009년 한 차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그해 2월 스프링캠프에서 그는 최고구속 154km를 찍어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스피드는 3월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더 빨라졌다. 스피드건 오작동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경기가 벌어진 팻코파크 전광판엔 159km까지 찍혔다. 그 공을 제외해도 최고구속은 156km였다. 더구나 다르빗슈는 대회기간 꾸준히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선보였다. 이는 맡은 보직이 구원투수였기에 가능했다. 한 경기에서 100개가량을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로서 다르빗슈는 이 같은 구속을 유지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체중과 근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의 2009시즌 직구 평균 구속은 146km. 2010년도 145.9km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후 잠시 미뤄둔 구속 증강. 욕망을 다시 불러일으킨 건 워싱턴 내셔널스 신인투수의 역투였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다. 2010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을 때까지 엄청난 강속구를 던져 메이저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직구 평균 구속은 무려 156.7km. 4년째 이어진 1점대 평균자책점 행진에 지루해하던 다르빗슈에게 이는 충분한 자극제였다. 당시 그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트라스버그처럼 1회부터 9회까지 꾸준하게 강속구를 던지고 싶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출발한 구속 증강 훈련은 꽤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다르빗슈는 우선 90kg 초반대의 체중을 105kg까지 늘렸다. 여기에는 상당한 노력이 기울여졌다. 강도 높은 트레이닝에 고단백,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구성된 식이요법을 병행, 늘어난 체중의 대부분을 근육으로 만들었다. 다르빗슈는 2011년 2월 스프링캠프에서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에 “체중을 100kg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해 직구 평균구속은 149.3km까지 뛰어올랐다. 1년 사이 3.4km를 끌어올린 셈. 급격한 구속증가는 신체밸런스를 무너뜨릴 위험을 동반한다. 다르빗슈에겐 예외였다. 지난해 그는 자신의 시즌 최다이닝인 232이닝을 던졌다. 28차례 선발 등판했는데 이 가운데 퀄리티스타트는 27번이었다. 실패한 경기는 4월 12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홈경기로 7이닝 7실점을 기록했다. 다르빗슈는 1.44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준비는 그렇게 척척 맞아떨어져갔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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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예정된 수순대로 다르빗슈는 포스팅시스템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매체들은 포스팅 예상금액으로 8천만~1억 달러를 내다봤다. 물론 마쓰자카의 실망스런 성적을 근거로 몸값 하락을 우려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발표된 다르빗슈의 독점협상권자는 텍사스였다. 그들이 내민 포스팅 액수는 5170만 달러. 텍사스는 지난 1월 18일 다르빗슈와 6년간 6000만 달러의 조건에 연봉 협상을 매듭지었다. 결국 다르빗슈 영입에는 총 1억 1170만 달러가 소요됐다. 텍사스의 구단주이자 사장인 놀란 라이언은 다르빗슈를 데려온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 콜번 아시아·태평양 총괄 스카우트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콜번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 동안 히로시마 카프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미국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수차례 일본을 찾아 피칭을 관찰한 존 다니엘스 단장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메이저리그에 좋은 투수는 많지만 당장 시장에 나온 선수는 제한적이다. 다르빗슈 영입을 위해 우리 구단은 많은 돈이 들였다(웃음). 우리 팀엔 맷 해리슨, 데렉 홀랜드, 네프탈리 펠리스, 알렉시 오간도 등 젊고 재능 있는 투수들이 많다. 나는 다르빗슈가 비슷한 나이대인 이들과 경쟁하며 팀의 에이스로 성장해주길 기대한다.”

다르빗슈는 지난 2월 텍사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담금질에 나섰다. 애리조나에 위치한 훈련지는 본래 무척 한적한 곳이었다. 오고가는 취재진은 많아야 10여명. 텍사스 캠프에 고정적으로 머무는 매체는 MLB.com, 댈러스 모닝뉴스(Dallas Morning News),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Fort Worth Star Telegram), ESPN 댈러스 그리고 텍사스 경기를 중계하는 지역방송 폭스스포츠 댈러스(Fox Spoorts Dallas) 정도였다. 올해는 달랐다. 150여명의 일본 취재진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텍사스 구단 관계자들이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건 당연지사. 다르빗슈에 관심을 드러낸 건 일본 매체만이 아니었다. 텍사스와 함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를 속한 구단들의 지역지 기자들도 이례적으로 스프링캠프를 방문, 다르빗슈를 관찰했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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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다르빗슈의 다양한 구종. 스프링캠프에서 다르빗슈는 직구(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일곱 가지 공을 선보였다. 이에 MLB.com 라일 스펜서 기자는 “다르빗슈의 구종은 중고차 딜러의 자동차 키 개수만큼 다양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당시 다르빗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펜피칭만으로 시즌을 전망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변화구 가운데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구종이 될 것 같다. 다른 구종도 나쁘지 않다. 다만 직구의 제구가 다소 불안하다. 물론 이 점은 시즌을 치르며 수정하면 된다. 문제는 많은 구종을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불펜 피칭 투구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단 점이다. 여름이 되면 알링턴에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찾아온다. 많은 구종을 던지며 체력관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성공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달렸다.”

②편에서 계속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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