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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만으로도 짝퉁 찾는다"-인천공항세관원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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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가짜 공화국]지재권을 지키는 그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프롤로그=인천 중구 영종도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은 여행객들이 '낭만'과 '이별'을 나누는 관문이면서도 동시에 총성없는 전쟁터다.

온갖 '짝퉁' 제품과 마약ㆍ향정신성 약품 등 유해성 물질들을 국내에 반입하려는 범죄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는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24시간 전쟁을 벌이는 곳이다.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은 빠른 세관 수속을 통한 물류 경쟁력 확보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짝퉁ㆍ위험 물품으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우리 경제주체ㆍ국민들을 보호하라는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오늘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수화물ㆍ승객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짝퉁'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내 인천공항이 세계공항서비스 평가 7년 연속 1위를 차지하게 된 실질적인 주역 중 하나인 인천공항세관을 찾아가 봤다.

#지난 2월 인천공항세관의 수화물 검색 창고에서 근무 중이던 최봉구(33) 검사관은 전산 자동 선별돼 검사장으로 온 운동화를 검사하던 중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챘다. 외관상 특이한 점은 없었지만 운동화를 구부렸을 때 둔탁한 느낌이 있었고, 포장된 상자 또한 평소 보던 것과 왠지 모르게 달랐다.

최 검사관은 즉시 해당 상표 제조업체 관계자를 불러 감정을 의뢰한 결과 가짜로 판별됐다. 바코드로도 가짜 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위조된 짝퉁 운동화 였지만, 최 검사관의 '개 코'를 벗어날 순 없었다. 최 검사관은 해당 상표 제조 업체 관계자를 불러 진위 여부를 확인했고, 조사 결과 대량 수입된 짝퉁 제품임이 드러났다.
최 검사관은 즉시 수입업자를 수사 의뢰하는 한편 동료들과 전국의 타 세관에 적발 요령을 전파했다. 그는 "일단 물건을 검사하게 될 경우 냄새를 맡아 본다. 제대로 된 메이커의 제품은 뒷 마무리가 잘 돼 있어 휘발유 등 화학성 냄새가 잘 안 나는데, 위조 제품은 많이 나는 편"이라며 "밤새 24시간 근무를 하다가도 짝퉁이나 위해물품을 찾아 내고 나면 짜릿하다. 내가 놓치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철저히 살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총성없는 전쟁터다". 지난 18일 인천공항세관 화물터미널 세관 검사창고에서 만난 심상수(48) 인천공항세관 화물정보분석계장은 세관 검사창고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세관 검색 창고는 적들이 눈앞에 보이지만 않을 뿐 말 그대로 총칼을 들고 맞싸우고 있는 국경선과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심 계장은 "이곳에서 뚫리면 끝장이라는 사명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는 최전선에 바로 우리 직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찾아 본 세관 검사 창고에선 7~8명의 세관 직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수화물 속에서 이리 저리 짐을 뒤적이면서 진품 여부와 위해 물품이 들어 있는 지를 검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게차가 짐 사이를 누비면서 먼지가 일어나고 굉음이 이는 등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이곳에서 검사하는 화물들은 약 150건~180건 가량으로 전체 화물의 3% 가량 된다는 게 안내를 맡은 세관 직원의 설명이었다. 계절ㆍ시기 별로 '짝퉁'이 수입될 가능성이 높은 물건들이 그때 그때 바꿔가며 세관 창고의 마당을 차지한다고 한다. 요즘은 어린이날ㆍ어버이날 등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운동화 등 수요가 많은 물건들이 세관 창고에 주로 들어 온다.

세관 직원들은 이곳에 들어오는 수많은 화물 중 어떻게 짝퉁과 위해물품을 구별해 낼까?

세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 인천공항을 통해 수입되는 화물들은 모두 '정보 분석' 과정을 거치는데, 이중 일부는 무작위 표본 차출을 통해 세관장으로 향해 검사를 받는다. 또 세관의 스크린 결과 짝퉁 또는 유해 물품 포함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수입된 물건이나 화주ㆍ운송자 등의 이력이 수상한 물건들은 반드시 이곳을 거쳐 간다고 한다.

세관 검사장에 근무하는 이들은 이렇게 해서 창고에 도착한 화물들을 일단 일일이 엑스레이 검색기를 통과시킨다. 내용물과 명세서에 적힌 물건이 맞는 지, 신고 안 된 물품이 들어 있는 지, 폭발물ㆍ총기 등 위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지가 우선 검사된다.

다음에는 세관 직원들이 각 물건의 창고 보관 책임자의 입회하에 일일이 물건을 뜯어 보는 수검사가 실시된다. 검사가 끝나 이상이 없는 물건은 세관 필증을 붙여 통과시키고, 이상이 발견된 물건은 짝퉁 물품의 경우 해당 제조업체 직원을 불러와 정확한 판별을 거쳐 수입업자를 고발하고 물건을 압류시킨다. 새로운 유형의 위조상품이 등장할 경우 식별 요령을 만들어 전파시키기도 한다. 덕분에 이 곳에서 근무하는 세관 직원들은 모두 '개 코'나 '매의 눈'이 된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수화물 처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2개조로 나뉘어 24시간 근무하다 보면 저절로 짝퉁 또는 위해 물품을 식별하는 요령이 생겨 어느새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심 계장은 "오래 근무하게 되면 경험과 노하우가 생겨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며 "요즘은 짝퉁 제조업체들의 기술도 매우 정교해지고 진화해서 웬만하면 구분이 안 되지만, 바느질 모양ㆍ재봉 솜씨 등을 잘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고 노하우를 자랑했다.

세관 직원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24시간 맞교대를 하다 보니 남들과 근무 시간대가 맞지 않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허허벌판 커다란 창고 속에서 일하는 바람에 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여름엔 더위에 고생한다. 화물 창고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먼지를 많이 들이 마셔 다들 감기를 달고 산다.

심 계장은 "남들은 한달에 보름 동안만 근무한다고 좋다고 말할 지는 모르지만 24시간 쉬지 않고 근무하고 나면 다음날 피곤함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쉬어야 해 고충이 많다"며 "특히 화물량이 2003년 개항 초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신속 통과와 안전ㆍ보안 문제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해 직원들의 업무량도 동시에 늘어났다"고 전했다.

세관 검사장을 벗어나 압류 물건들이 보관되는 창고로 향했다. 이곳에는 그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형 사건들의 산 증인 격인 압류 물건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개인들이 한 두 개씩 몰래 들여 오려다 압수당한 고가의 명품 가방부터 대량 수입하려다 세관의 감시망에 적발된 의류ㆍ신발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 곳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저작권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것들로 증거 보전 차원에서 세관이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물건들이었다.

시험삼아 뜯어 본 박스엔 소위 명품 브랜드인 'L'사 제품이 지갑ㆍ신발ㆍ의류ㆍ가방 등 종류 별로 가득 담아져 있었다. 다른 가방에도 2009년 12월 압수된 C브랜드 가방, L브랜드 시계, B브랜드 핸드백 등이 잔뜩 담겨져 있었다. 겉보기엔 모두 멀쩡한 제품들이지만, 세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세히 들여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얼핏 봐서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약간 어색한 느낌이랄까. 잠깐 돌아봤다고 어느새 기자의 눈도 '매의 눈'이 된 것 같았다.

이 곳에 보관된 물건들은 수사와 재판이 끝날 때까지 보관된 제품들은 대부분 소각로에서 폐기된다. 예전엔 일부 세관 직원들이 압류 물건을 빼돌렸다가 적발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철저한 관리로 그럴 여지가 없다고 한다. 다만 운동화ㆍ의류 등은 해마다 1~2차례씩 해당 상표권자와의 협의를 거쳐 상표를 제거한 후 국내 저소득층 또는 해외의 빈곤 국가에 기증된다.

이렇게 해서 인천공항세관이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보호한 국내 지적재산권은 56건 285억 원 어치에 달한다. 지난 1/4분기 동안 단속한 국민 건강 위해 의심 물품도 257건이었다. 국제우편물, 특송 화물 등을 통해 몰래 들여 온 것들을 세관 검사관들이 적발한 것들이었다. 엑스터시와 환각효과가 유사한 신종마약류인 '2C-B'를 함유한 알약 및 환각성분 'LSA'를 함유한 씨앗 등 국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위해 물질들이 대거 세관 검사들의 활약으로 퇴치된 것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안내를 맡았던 강관구 세관 반장은 '사명감'을 재차 강조했다. 강 반장은 "여기서 뚫리면 더 이상 짝퉁과 위해 물품을 걸러낼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보다 빠르고 철저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경제ㆍ안보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세계 최우수 공항의 지위 사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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