令이 멈췄다..MB만 모르는 레임덕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박현준 기자] 개각이 이뤄진 일부 부처 공무원들은 요즘 두 갈래로 나뉜다.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업무보고를 준비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공무원들이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이어질 후속인사를 놓고 주판알을 퉁기는 인사들도 많다.
차관 출신이 장관에 내정된 한 부처에서는 장관 내정자가 혼주였던 '결혼식' 참석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 부처의 한 관계자는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할 것으로 예상돼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면서 "뜻밖에 장관으로 내정되자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했다.
내부출신이 장관에 내정된 또 다른 부처는 후임 차관을 두고 고려대, 영포회 라인을 따져보거나 외부인사가 내정된 부처에서는 반대로 차관도 비전공자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인사철을 앞둔 관가에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심각하다. 복지부동은 공무원 사회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현상)의 대표적인 현상. 대통령과 청와대만 모르고 있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부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이 와중에 공무원사회의 기강해이는 이미 만연하고 있다. 외교부의 상하이스캔들, 상아밀반입, 금융감독기관과 저축은행간의 각종 비리와 결탁, 권익위원회 간부의 성폭행 파문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 레임덕은 없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레임덕은 부정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박천오 명지대 교수)는 말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총선, 대선을 앞두고 관가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더 다양하다. 최근 세종로 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선 외교통상부에 대한 부러움 섞인 뒷말이 나왔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유럽을 순방할 때 공식적으로 3명의 수행원을 파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유럽 현지의 공관장들도 박 대표에게 VIP급 예우와 의전을 했다는 후문이다. 세종로청사의 한 고위 공무원은 "권력의 향배에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외교부가 미래권력에 얼마나 잘 했겠냐"며 "그나마 이렇게 공식적으로 눈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는 외교부가 부러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귀국날, 공항엔 60여명의 친박계 의원들과 150여명의 지지자들이 마중을 나가 북새통을 이루었다. 현장에선 친박계 출신으로 현역 장관인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눈에 띄었다. 일찌감치 사의를 표명했던 유 장관이지만 엄연한 현직 장관의 신분으로 계파 수장격인 박 전대표를 공항까지 나가 영접한 것이다. 그랬던 유 장관이 대통령이 해외 출장중이던 11일 국무회의에는 7분 늦어 국무회의가 늦게 열리는 빌미를 제공했다.
문제는 이같은 레임덕 증후군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년도 예산을 짜면서 공무원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은 총 지출증가율을 총 수입증가율보다 2∼3% 낮게 가져가, 균형재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각 부처는 현재 이 기준에 맞게 부처별로 예산요구서를 내달말까지 재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그러나 "영남권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에선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역예산을 대폭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수도권,호남, 충청,강원등을 가리지 않고 이같은 요구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역의 이같은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게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데다가, 지난 4.27 재보선 결과를 보면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정부는 이미 내년도 총선,대선바람이 공직사회에 스며들 것으로 보고 올해 감사원과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등 감찰라인을 중심으로 공무원 기강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까지 1년 6개월 남짓 남은 현 시점에서 공무원 기강잡기만으로 레임덕을 차단하기는 역부족이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레임덕엔 특별한 대처법이 없다"고 했다. 박 교수는 "차기 정권에선 전 정권에서 일한 사람과 손발을 맞추기 싫어하고,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관료들도 정반대의 정책을 하는 걸 싫어한다 레임덕이란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면서 "가장 교과서적인 해법은 새 정책을 추진하기 보다는 기존 정책을 잘 마무리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레임덕이라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현 정권에서는 정부로서 해야할 정책을 추진한 게 사실상 없다"고 일갈했다. 최 교수는 "각 행위자들이 사익을 추구했을 뿐이다. 일을 추진했는데 정권말에 들어 안 먹히면 레임덕이라고 하는 건데 이 정부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 그 동안 일을 한 게 없었다"고 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