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위기의 인문학 '기업'이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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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인문학을 살려내기 위한 노력이 힘을 얻고 있다. 다양한 형식의 인문강좌 인기가 치솟고, 얄팍한 실용서에 밀려났던 인문 교양서도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자칫 지나친 과열과 불필요한 거품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문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투자와 노력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민주화된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의 정체와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추구하는 인문학이 자연의 정체를 밝혀냄으로써 우리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과학기술과 대립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서로를 외면하고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모두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확실한 인식이 더욱 강조돼야 하고 '문진(問津)'의 정신을 앞세워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적극적인 융합을 추구하는 사업은 더욱 확대시켜야만 한다.

인문학이 연구실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해야 한다는 고집도 버릴 필요가 있다. 물론 인문학이 전방위적으로 연구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그렇듯이 인문학도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활용되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학술 논문으로만 번성하는 인문학은 공허한 탁상공론일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은 실용과 효율도 적극적으로 포용해야만 한다. 물론 지극히 한정된 집단이 아니라 민주화된 사회 전체가 용납할 수 있는 실용과 효율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이나 상업적으로 오염되거나 학문적 기반을 상실한 인문학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엄격한 자기성찰을 외면하고 코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학자적 양심과 권위를 포기해버린 엉터리 인문학자는 천박한 약장수일 뿐이다. 특히 정치와 야합한 인문학의 폐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 우리가 수없이 경험한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부질없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감성만 자극하는 화려한 수사와 얄팍한 궤변만을 쏟아내는 사이비 인문학도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독약이다.

현대의 인문학에서는 다양성도 중요하다. 사실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인문학은 절대적일 수가 없다. 더욱이 다양성이 강조되는 21세기의 민주화된 과학기술 사회에서 인문학의 다양성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특성이 돼야만 한다. 획일화된 인문학은 획일화된 윤리와 도덕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현대 사회의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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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문학에서도 객관적인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탐구에서 강조되는 개방성, 민주성, 비판성,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정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물론 객관적 합의나 검증의 대상을 찾기 어려운 인문학에서는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문학이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면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위력을 가진 자본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인문학에서의 산학협동은 인문학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잘못된 산학협동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으면 인문학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산학협동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바람직한 방향과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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