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농가월령가 | ⑦ 전남 영암군 ‘남산농원’ 박명준 대표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남산농원을 찾아가는 길은 촉촉한 봄비가 내린 바로 직후였다. 그곳에서 처음 본 것은 지평선이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경계라는 지평선이 남도 들녘 한복판에서 재현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도시의 빌딩 속에서 하루 종일 걸어도 맨땅을 밟기 어려운 서울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주듯 남도의 풍성함과 여유로움은 그렇게 이방인을 반겨줬다.
박명준 남산농원 대표는 국화꽃을 일본시장에 수출하는 비결에 대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그는 남산농원의 국화를 ‘시크릿 가든’이라는 브랜드로 일본 도쿄 오타시장의 FAJ(Flower Action Japan)에 직접 거래 상장을 하고 꽃을 수출하고 있다. 박명준 대표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알아주는 한국이 낳은 화훼농사 전문가이다. 지금은 잠깐 손을 놓고 있지만 러시아시장 개척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뛰었고, 대만이나 베트남에서도 국화재배 기술을 제휴하자는 연락이 줄을 잇는다.
박 대표가 이렇게 국화 재배의 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그는 도시생활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자 당시 부모님이 계시는 전남 영암군으로 귀농을 했다. 말이 귀농이지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고향도 아닌 타향에서 일면식도 없던 남에게 겨우 사정해 논을 몇 마지기 임대해 2모작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화훼농사는 처음엔 안개꽃(속근초) 재배로 시작했다. 밤낮없이 꽃농사에 심혈을 기울이다 마침내 출하를 하고 보니 소득이 벼농사의 몇 배로 늘어났다. 그는 화훼소득 전부를 모아 농지를 구입하고 하우스를 늘리는데 투자했다. 정부지원자금은 일절 받지 않기로 원칙을 정했다. 이렇게 20년을 농사지은 결과 현재는 국화를 비롯한 화훼시설하우스 6000평, 수도작 1만5000평, 밭작물 1만평, 기타 토지·임야 4만5000평을 보유하게 됐다.
“꽃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무척 셉니다. 일반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과는 약간 다른 구석이 있어요. 먹는 게 아니라 보는 상품이기에 문화를 만들고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들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들이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와는 사뭇 다르죠.”
일본이 좋아하는 ‘상잎’ 재배기술 최고의 경지
박 대표는 화훼농가의 정보 교류가 다른 곳과 달리 극히 폐쇄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작목들은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지만 국화 재배는 그게 쉽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국화를 정성들여 키웠는데 시장에 내놓을 때면 우리 것만 달라요. 다른 곳의 국화는 꽃봉오리 끝이 덮여있는데 우리 것만 동그란 점이 나타나고 다 덮이지 않는 거예요. 그게 남들 제품과 비교할 때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몰라요.”
부인 정미순씨는 국화 농사를 지으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꺼내놓는다. “그런데 일본의 ‘정흥원’이라는 국화품종회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그 고민을 얘기했더니 그 회사 사람이 크게 웃어요. 꽃잎이 다 덮이지 않고 동그랗게 점처럼 나타나는 게 오히려 더 잘 지은 농사라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우리만 기술이 떨어지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거꾸로 정흥원에서는 그 재배기술을 높이 사서 우리와 인연을 맺은 것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그 점처럼 생긴 모양이 얼마나 예쁘게 보였는지 몰라요.”
남산농원의 재배기술이 일본에서 먼저 인정받으면서 두 부부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자랑할 만한 기술로는 ‘상잎’이라는 게 있어요. 꽃은 문화상품이다 보니 한국과 일본의 취향이 달라요. 한 마디로 상품성이 다른 것이지요. 한국 시장에서는 국화의 꽃을 주로 보지만 일본시장에서는 꽃이 피면 안돼요. 그리고 잎이 얼마나, 어떻게 붙어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 일본에서는 꽃 화경이 작고, 잎은 위에 것은 크고 넓으며, 아래로 갈수록 작아지는 ‘상잎’을 최고 기술로 쳐요.”
박 대표가 설명하는 이 기술은 국내에서는 남산농원이 거의 독보적인 기술수준이라고 했다. 때문에 일본 시장에서도 남산농원의 국화는 평균 가격보다 높게 형성된다. “국화 수요는 시기마다 다른데, 이제 가격이 좋을 때에요. 한국은 졸업과 입학 때가 성수기이지만 일본은 국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나라예요. 일본 오봉절(추석)이나 히간절(추분) 같은 기념일은 물론 평소에도 국화 수요가 많고요. 때문에 일본 수출은 1년 내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일본은 국화소비가 연간 20억 본에 달한다. 이는 세계 국화 소비량의 30%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만큼 많은 나라들이 일본 국화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돼 있다. “우리 국화는 일본에서 한 본당 55∼65엔 정도 받아요. 그러던 게 하루하루 가격 갱신을 하더니 이제 90엔을 넘어섰어요. 아마 성수기에는 100엔도 거뜬히 넘어갈 것 같아요.”
일본 FAJ에서 출하 때마다 메일로 발송되는 거래명세서에는 하루가 다르게 꽃값이 치솟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전남국화산학연협력단과 함께 전남지역의 국화 수출을 위해 수출법인인 호티피아를 통해 일본에 국화를 수출했었다. 하지만 일본의 문화를 모르고, 실적 위주의 업무에 익숙한 한국과의 인식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국화 수출의 꿈이 무산될 뻔 했다. 호티피아의 이름으로 일본에 약속한 국화의 수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는 정부와 농식품부가 ‘농식품 수출 100억 달러’를 목표로 정하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을 때 였다. 하지만 약속했던 일부 농가에서는 국내 국화가격이 올라가자 일본수출 약속을 어기고 국내로 돌려 유통시킨 것이었다. “우리도 농사를 지으니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1년에 2작기 농사인데 출하할 때 가격이 높으면 마음이 흔들리겠지요.”
박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농가에 대한 원망보다는 지속적으로 거래선이 확보되면 더 높은 가격으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농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많았다고 했다. “결국 호티피아라는 브랜드로 일본 수출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일본에서도 남산농원이 다른 브랜드로 다시 들어오면 기회를 주겠다고 얘기했고요. 어쩔 수 없이 ‘시크릿가든’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회사 등록을 했어요. 다행히 큰아들 주환이가 일본어에 능통하고 가업을 잇겠다고 준비했던 터라 회사 대표로 등록하고 맡겼지요.”

남산농원은 국화를 일본에 수출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수출과 내수가 7:3 정도 비율이지만 박명준 대표와 부인 정미순씨는 국내 국화재배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원본보기 아이콘그동안 쌓아놓은 일본과의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여서 박 대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9월에 부랴부랴 회사 등록을 하고 일본에 온가족이 날아가서 벌어진 사태를 정리하고, 담당자들과 관련자를 찾아다니며 사과했어요. ‘시크릿가든’ 브랜드로 일본시장을 다시 공략하는데 65엔씩 받던 국화가 2∼5엔으로 곤두박질친 거예요. 하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거래를 이어갔지요. 입이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지요.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니까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제값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호티피아 때 평균 55∼65엔 하던 게 92엔까지 치솟았지요. 이제는 다시 웃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백제 왕인박사같이 문화수출 자부심 충만
박 대표의 집 뒤에는 지금 한옥을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박 대표 가족이 사는 바로 뒷마당에 31평 규모의 집을 새로 짓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끔 손님들이 오는데, 광주까지 나가서 자는 것보다 우리 집에서 머무는 걸 좋아해요. 또한 시크릿가든 포장상자마다 아들의 명함에 번호가 매겨져 붙여 나가죠. 일본에서 우리 꽃을 사간 사람들에게 추첨을 통해 3박4일 정도 한국 초청을 할 생각입니다. 일종의 경품인 것이지요. 이때 사용하기 위해 짓는 것입니다.”
아들 박주환씨는 일본 사람들에게 전남 영암군을 소개할 때마다 F1경기장과 왕인박사 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국화를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수출한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처음엔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큰 애가 정보통신 공부를 2년이나 하다가 아버지 사업을 이어보겠다고 원예로 전공을 바꿔 공부했어요. 일본 시장을 알아야 겠다고 해서 일본 유학도 했지요. 학교 다닐 때 컴퓨터작업을 잘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이런저런 서류작업을 돕다보니 돈이 되겠다 싶은 것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우리 가족 모두가 남산농원과 국화재배를 이어가는 셈이지요.”
남산농원의 경영 제1원칙은 품질
일본에서도 호평 받는 남산농원 국화의 경쟁력은 당연히 품질이다. 이렇게 높은 품질력을 얻기 위해서는 남산농원만의 노하우가 있다.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박명준, 정미순 부부가 밤잠을 설쳐가며 현장에서 체득한 영농기술이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그 첫째로, 재식거리를 넓혀서 통풍과 채광 효과를 배가시켰다. 햇빛이 잘 들게 해서 꽃의 색깔을 곱게 했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해서 꽃대가 건강하게 한다. 남산농원에서는 재식거리를 10㎝ x 12㎝로 넓혀 3.3㎡(1평)당 140∼160주 만 심는다.
이렇게 하면 8㎝ x 8㎝ 간격으로 1평당 180주를 심는 일반농가에 비해 평당 수량이 20% 정도 줄어든다. 이렇게 감소한 수량은 작업 편의상 일반농가에서는 70∼80㎝로 넓게 두는 고랑 폭을 25㎝로 좁게 만들어 재식거리 확대에 따른 수량 감소를 상쇄한다. 결국 한 두둑에 심는 국화의 수는 적지만 고랑의 폭을 줄여 두둑을 많게 함으로써 생산량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둘째, 남산농원은 다른 농가보다 물 관리에 철저하다. 보통 일반농가에서는 10∼15일에 한 번씩 물을 주지만, 남산농원에서는 2∼3일에 한 번씩, 또는 매일 물을 공급한다. 이렇게 물을 자주 주면 국화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디 사이(절간)가 고르게 자란다. 항간에는 국화에 물을 너무 자주 주는 게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지만 남산농원에서는 땅이 마르기 전에 점적호수를 통해 물을 공급한다.
셋째, 남산농원은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퇴비로 토양을 관리한다. 남산농원은 2년에 한번씩 300평당 3t의 퇴비를 사용, 충분한 양분을 공급해 연작 피해를 해결한다. 보통 6∼7월 작기가 끝나면 1년은 볏짚을, 또 1년은 3년간 발효한 한우 축분을 뿌려준다. 이런 노력이 땅의 양분이 고갈되는 것을 막고 염류 장해를 피하는 비법이라는 것이 박씨 부부의 귀띔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