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의 '한국 경제' 진단
신분계급 질서 완전한 붕괴
경제 초고속 성장 동력 작용
청년들 좌절감 함께 깊어져
성실성·실력 '공정경쟁' 필요

국제기구와 정부, 학계를 두루 거친 경제 전문가인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최근 '한국 경제성장의 정치경제학'을 펴내고 한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단을 내놨다. 경제학자이자 외교관으로서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관찰한 결과를 책으로 엮어냈다.


조 교수는 6일 서울 마포구 인근에서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쓴 계기에 대해 "경제학도로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많은 개도국들을 방문해 정책협의와 보고서를 작성할 기회가 있었다"며 "그때마다 이 나라들이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구의 경제학자들이 그들이 발전시킨 경제이론의 틀에서 개도국들의 경제발전에 대해 논하고 처방하는 것에 대해 늘 어딘가 미흡하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조 교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1970~1980년대생들과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한국 경제의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많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했다.


조윤제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조윤제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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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한국 경제 초고속 성장의 핵심 동력 중 하나로 '신분계급 질서의 완전한 붕괴'를 꼽았다. 그는 "과거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빠른 신분계급 질서의 붕괴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불러왔고, 거기서 분출된 엄청난 에너지가 한국 경제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 됐다"면서도 "역동성이 불과 한두 세대 만에 그친 것은 크게 아쉬운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1980~1990년대 들어서면서 기득권층이 빠르게 형성되고 계층 간 사다리가 좁아지면서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깊어지기 시작했다"면서 압축 성장 과정에서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가치의 문제, 분배 문제, 이중구조, 양극화 심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역동성 회복을 위해서는 공정경쟁 질서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경쟁구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성실성과 실력으로 경쟁하게 하고 낙오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주고 약자에 대한 복지를 높이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 교수는 세계 경제 질서가 이미 재편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세계 경제는 이미 자유무역, 다자주의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미·중 갈등 심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동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이 세계가 점점 불안정하고 위험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이 수출 의존형인 한국 경제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가장 싼 곳에서 조달하고 제조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 왔지만, 이제는 생산 공급망의 안전과 자원 및 부품의 안정적 조달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경제와 안보가 직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산업시설의 확장과 기술 추격이 이미 우리 기업들에 큰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이 쌓아 올린 글로벌 경쟁력과 네트워크, 글로벌 경영 경험과 지경학적 입지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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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과 대처 능력을 키우고, 빠른 시대 변화에 대응할 조직의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라고 주문했다. 그는 "최근 독일 제조업의 정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경쟁력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산업은 빠르게 신사업을 모색해 기업의 자원을 옮기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이 가진 잠재력에도 주목했다. 우리나라가 자유무역의 가장 큰 수혜국인 만큼, 다자간 국제기구를 통해 개방정책과 다자주의를 유지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국으로, 반도체·디지털 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방산 등에서도 경쟁력과 입지를 확보한 몇 안 되는 나라"라면서 해법 중 하나로 다른 중견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와 경제성장률을 보면 향후 세계에서 중국의 상대적 위상이 점점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면서 "한미동맹을 유지하되 우리의 자율적 입지를 높이고, 중견국가로서 다른 중견국들과 연대를 강화해 강대국 경쟁에서 생기는 국제질서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메워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윤제 교수는
1952년 2월 22일 출생. 서울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경제학 박사 취득). 주요 경력은 ▲세계은행(World Bank) 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자문관 ▲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및 국제대학원장 ▲대통령 경제보좌관 ▲ 제21대 주영대사 ▲ 제25대 주미대사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등이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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