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기 남양주시 한 주택가의 공공 놀이터. 벤치 아래에는 누런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누군가 버린 음료수 캔과 과자 봉지들이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미끄럼틀 주변을 채운 건 어린아이들이 아닌 키가 훌쩍 큰 고등학생들이었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놀고 있었지만, 미끄럼틀 곁으로는 다가가지 못했다. 부모들은 "모래 만지지 마, 지지!"라고 말리기 바빴다.
인근 키즈카페에서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대기번호는 130번대를 넘겼다. 친절한 안전 관리자가 아이들을 챙겼다. 뛰노는 공간 역시 푹신한 매트로 덮였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백나래씨(40)는 "입장료에 밥값까지 10만원 가까운 돈이 들지만, 키즈카페로 향할 때가 많다"며 동네 놀이터는 안전사고나 위생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아이들의 놀이마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달라지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전체 공공 놀이터는 늘고 있지만, 대부분 신축 아파트 단지에 몰려 있거나 관할 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의 안전을 위해 비싼 값을 치르며 키즈카페 등 유료시설로 발길을 돌린다.
1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키즈카페, 실내 놀이터 등 놀이제공영업소로 분류되는 유료 놀이시설은 2017년 786곳에서 지난달 1874곳으로 1088곳 늘었다. 이 기간 어린이집·유치원, 도시공원, 주택단지 놀이터 등 무료 놀이시설은 6만1251곳에서 7만2465곳으로 1만1214곳 증가했다.
수치가 늘었다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까지 보장됐다고 보긴 어렵다. 이 기간 공간이 분리돼 있고 안전 관리자가 상주하는 어린이집·유치원 놀이시설은 2396곳 줄었다. 2801곳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끈 도시공원 놀이터는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2년에 1회 이상 시설을 점검할 뿐 상주 인력이나 안전·위생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사각지대다.
주택단지 내 시설은 1만809곳 늘었지만,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최근 신축 단지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엄격히 차단하는 경향을 고려하면, 부모의 주거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환경에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키즈카페는 주기적인 시설 점검에 쾌적한 환경까지 갖췄다. 서울 강남구 한 키즈카페는 주말 기준 1인당 2시간 이용요금 2만7000원, 보호자는 1인당 7000원이다. 두 명의 아이가 두 명의 보호자와 동행할 경우 입장료만 6만8000원에 달한다. 여기에 1인당 식사비 9000원(총 3만6000원)을 포함하면 키즈카페를 2시간 이용하는 데 10만원 넘게 필요하다. 최다별씨(30)는 "아이가 크기 전까지는 놀이터 대신 키즈카페를 갈 것"이라며 "동네 놀이터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덜하다 보니 부모가 계속 신경 써야 해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땐 키즈카페가 낫다"고 말했다.
부모의 경제적 여력에 따라 놀이 환경이 결정되는 양극화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가구 소득별 사설 키즈카페 이용률 격차는 20.2%포인트로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이 낮은 아이들은 안전하고 쾌적하게 관리되는 유료 놀이 환경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의미다. 학부모 이경찬씨(47)는 "예전처럼 들판에서 뛰어놀거나 주차장에서 공놀이하기엔 너무 위험한 세상"이라며 "이제는 부모가 돈이 없으면 노는 것도 차이가 나는 시대"라고 씁쓸해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의 소득 격차가 놀이 수준을 결정하는 격차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아동 예산은 지방이양 사업으로 지자체장의 관심도에 의해 좌우된다"며 "놀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정책을 국가 사업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