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이선 크로스의 '감정의 과학 Shift'
고대 잉카인은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인류 최초의 외과 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두개천공술'은 현대 의학 기준으로도 난도가 높고, 위험성이 높은 수술로 여겨지는데, 당시 어떤 이유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머리에 구멍을 뚫었을까. 이 책은 "사람들의 감정 관리를 돕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며, 감정 조절의 문제는 곧 인류 역사의 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고 분석한다.
고대 잉카인 '두개천공술'… 감정관리 돕기 위해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와 로스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역사학자들의 추론을 근거 삼아 고대 잉카인들이 두개천공술을 우울증이나 조증 등 감정 조절 장애 질환을 관리하는 데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 역사를 거슬러 보면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매우 다채롭다. 머리에 거머리를 붙이거나, 퇴마술을 이용했고. 17세기에는 불에 달군 쇠막대로 머리를 지졌다. 1949년에는 안구 뒤로 꼬챙이를 넣고 휘저어 뉴런의 핵심 연결을 끊어내는 방법으로 극단적 감정 상태를 치료하는 수술법을 발견한 신경학자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윤리·의학적 문제로 현재는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책은 이러한 감정 관리의 역사를 훑으며 현대 의학이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중점 내용 중 하나는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며, 이 점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장애인 인권운동가가 중요한 행사 참여를 위해 지하철로 이동하는 와중에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로 인해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경우, 즉각적으로 느끼는 짜증은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단, 이후 장애인 권리 옹호를 위해 힘쓰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포는 반응이지만, 용기는 결정이다"란 격언이 심리학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감정 조절·마음 치료의 문제는 곧 인류의 역사
즉각적 느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느낌 이후의 감정 조절은 통제 가능한 대상이다. 2000년 한 연구팀이 대학교 입학 예정인 학생 43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0%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에 저자는 인간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감정 처리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인 트리거에 한해서만 옳다"고 선을 그었다. 각기 다른 자극으로 트리거가 작동할 수 있지만, 감정의 지속 여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통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감정이 생겨나는 것 자체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감정 방정식의 절반일 뿐이다. 불꽃이 저 혼자 타오를 수는 있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그 불을 끌지 더 부채질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감정의 경로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60년대 말, 저명한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가 진행한 뱀 실험은 감정 통제 가능성을 상기한다. 실험은 뱀 공포증이 극심한 4명의 피실험자가 차츰 뱀에 다가가도록 이뤄졌다. 처음엔 단방향 거울을 통해 보기만 하다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점차 뱀에 다가갔고, 결과적으로 뱀 공포증을 극복했다. 실험을 통해 피실험자들은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 통제 능력을 인지했고, 이는 자기효능감 상승으로 이어졌다. 밴듀라 실험 이후 20여년간 이뤄진 114건(2만2000명 참여) 이상의 실험에서 28%의 자기효능감 상승이 확인됐다.
저자는 부정적 경험은 정면으로 직면해야 한다는 심리학계의 정설에 이견을 제시한다. 심리치료에 정답은 없으며 상황에 맞게 적절한 적용이 가능할 뿐이라는 것. 그는 회피 역시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미국 NBA 리바운더 데니스 로드먼이 악동적인 면모를 심리적 부담감을 덜기 위한 회피 사례로 소개한다.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최소 노동의 법칙'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힘든 상황과 마주한 상황에서도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익숙한 고통 안에 머무는 손쉬운 선택 지향적 습성을 역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는 미 해군 특수부대가 작전에 임하기 전 모든 상황에 대한 대응 계획을 세우듯, 우려되는 상황별 대처법을 미리 구상해 행동 돌입에 필요한 수고를 낮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최소 노동의 법칙'
1872년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더니딘 프로젝트'에 따르면 1037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감정 조절 능력을 측정하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50년 간 추적한 결과,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경제력, 건강, 노화 측면에서 우세했다. 반대의 경우 범죄와 중독, 건강 문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태생적 기질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저자는 인간의 전두엽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 감정을 통제할 힘을 지니며, 그 선택권은 각 개인에게 있다고 역설한다.
심리학에 하나의 답이 존재하고. 기준에 부합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을 과감히 배격한다. 고통의 대상과 직면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통념을 밀어내고,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사례가 탄탄한 편이지만, 일부 내용에는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감정의 과학 SHIFT | 이선 크로스 지음 |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376쪽 | 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