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는 '난가병(나인가? 병)'이 창궐한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우리 일반 국민과는 사고체계가 다르다. 우리는 당선 가능성과 시대정신, 선거 비용 등을 종합해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은 본인이 출마가 가능하다면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출마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은 난가병의 고위험군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왜 난가병에 빠질까. 먼저 정치인과 선거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정치인에게 선거는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선 유일한 기회인 선거를 통해 당선돼야만 한다. 또 이번 선거에 출마해 설사 떨어지더라도 얼굴을 알릴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선거가 유리해진다는 판단도 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마디로 정치인은 어떤 이유로든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기회 자체를 잃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뽕'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선거철 기자들끼리 사적으로 어떤 후보의 상태를 이야기할 때 종종 "선거뽕을 맞았다" 또는 "유세뽕에 취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선거철이 돌아오면 정치인들은 얼굴색부터 달라진다.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이 있는 따뜻한 사회라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위해 거리로 나가면 매몰차게 대하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후보자가 건네는 명함을 잘 받아주는 편이며 내심과 달리 웃으며 악수를 하기도 한다. 그 후보를 반대해도 면전에서 대놓고 욕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상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자는 선거뽕·유세뽕에 빠진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유권자들이 다 명함도 잘 받아주고 인사도 잘 받아준다. 그게 다 내 표 같아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는 크게 밀리지만 바닥의 민심은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보수 정치인이 기 받으러 서문시장에 간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선거에 큰돈을 들여가며 출마를 한다. 또 선거 과정에서 본인이 당선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예전 총선 때 수도권에 출마했던 한 군소정당의 후보는 선거운동원들에게 본인이 당선되면 해외관광을 시켜준다는 약속을 했다. 엄연히 선거법 위반이지만 유세를 하다 보니 만나는 유권자 대부분이 우호적이라 본인이 당선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흥분해 나온 약속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3%의 지지율도 얻지 못했다.
한편으로 자기 확신은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선거캠프는 후보자를 위해 구성되는 조직이다. 후보자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캠프가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는다. 후보자가 냉정하게 판단해 패배할 것이라 보는 선거를 누가 열심히 뛰겠는가.
조기대선이 돌아오자 정치권에서는 또 난가병이 창궐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실제로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예선탈락이 뻔해 보이지만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위해, 또는 다음 당권을 위해 출마한 듯한 후보도 보인다. 하지만 선거에 뛰어들기 전에 먼저 본인이 대통령직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돌아봐야 한다. 직의 무게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당선되면 우리는 또 조기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남긴 유명한 명언 "대선 때는 멀쩡한 사람도 (정신이) 약간 간다"는 말이 혹시 본인 이야기가 아닌지 스스로 묻길 권한다. 본인도 가족도 출마를 권유한 주변도 잘 모를 수 있지만, 국민은 누가 난가병에 걸려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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