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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VESTORS]⑭'국내 최초 AC' 김호민 대표 "모든 기업엔 위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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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은 인생을 거는 일…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이 기업
창업자의 능력보다 인성을 보는 것이 10년 이상 투자의 노하우
투자 감각 유지하는 비결은 실패한 회사·무너진 제국에 대한 연구

편집자주한국 자본시장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어느 때보다 혼탁하다. 작전이나 반칙이 판을 친다. 그러나 외환위기부터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투자 세계를 개척해 개인 투자자들의 모범으로 떠오른 투자가도 많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본시장의 전쟁 같은 스토리와 그들의 철학, 실패와 성공담으로 돈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가치투자와 행동주의, 글로벌 '큰손'으로 거듭난 국내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부터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를 이끄는 리더, 금융사 최고경영자 등 다양한 분야 고수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부양가족이 있나요? 와이프가 알아요?"


한국 최초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획자) 스파크랩의 김호민 대표가 창업도전자를 인터뷰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창업은 '한 번 해봐, 멋지잖아'라고 부추길 수 있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니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인생을 거는 것이고, 특히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큰 책임과 결정의 무게가 뒤따른다.

2012년 설립된 스파크랩은 김호민 대표를 포함해 이한주, 버나드 문, 김유진 공동대표가 이끄는 스타트업 AC이자 벤처캐피털(VC)이다. 국내 최초로 글로벌액셀러레이터네트워크(GAN)의 정식 멤버이기도 하다. 김 대표를 비롯한 스파크랩 공동대표 4명은 모두 창업자 출신이다. 대학 시절 PC방에서 4대 4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친해진 30년 인연이다.


스파크랩이 설립될 무렵에는 국내 스타트업이 도움을 구할 곳은 VC뿐이었다. 금융업계 출신, 컨설턴트 등이 이끄는 VC만으로는 스타트업 초기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초기 스타트업 운영법에 대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업계 인맥 소개와 초기 투자까지 하는 AC는 스파크랩이 국내 최초였다.


대학 시절 친구 넷이 한국의 와이콤비네이터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에어비앤비·코인베이스·드롭박스 등을 키워낸 실리콘밸리 대표 AC이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이 이끌었다. 스파크랩 역시 지난 12년간 미미박스, 발란, 원티드랩, H2O호스피탈리티, 엔씽, 스파크플러스 등 우수 스타트업 270여개에 투자했다. 포트폴리오 기업 생존율 90%, 누적 투자유치 금액 1조9000억원, 포트폴리오 기업 총 가치 7조9000억원에 달한다.

김호민 스파크랩 대표 [사진제공=스파크랩]

김호민 스파크랩 대표 [사진제공=스파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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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멘토 역할 "끈기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업을 해 본 사람들이다. 스타트업 대표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알고 있다."

창업자들은 초기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을 가장 막막해한다. 스타트업 운영 경험이 없으면 창업가들을 밀착 지원하기 어렵다. 스파크랩은 초기 투자 유치를 지원하기 위한 창업가들의 기업 소개 무대인 '데모데이'를 활성화했고, 초기 투자는 물론 18주간 집중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배치(Batch)'프로그램도 보급했다. 스타트업의 '멘토' 역할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가장 힘든 시간에 창업자들이 찾는 사람이 됐다.


"전화가 오면 좋은 소식은 없다. 돈이 떨어졌다, 동업자랑 싸웠다, 소비자와 분쟁이 있다, 주주 간 분쟁이 일었다 등등. 이제는 메뉴판에 다 있다. 조언할 때는 원칙은 하나다. 절대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준다. 지금은 정말 큰 일 같지만 돌아보면 별일 아니다. 모든 문제는 시간과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 너무 촉박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끈기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스타트업은 문제해결 집단…기술·능력보다 문제를 보는 눈

김 대표는 스타트업을 발굴할 때 보유 기술보다는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는지를 집중해서 본다. 스타트업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지 기술을 개발하려고 생긴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경제적 문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그것을 진짜 풀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 그리고 창업자의 인성을 본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변한다. 언제든 다른 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기술은 조연이고, 문제가 주연이라는 게 김 대표의 투자 철학이다.


"많은 창업자가 이 기술의 장점을 얘기하면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데 '뭐로 할까요'라고 투자자에게 물어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창업자가 절실하게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게 있으면 결국 풀어낸다. 그것이 스타트업의 가치다."


창업자의 능력보다 인성을 보는 것도 오랜 경험에서 쌓인 노하우다.


"모든 회사에는 위기가 온다. 반드시 온다. 스타트업은 더 강하게 온다. 진짜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이 남아있는 이유는 의리다. 리더가 그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사명감이고 인성이다. 돈이 끊기면 사람들이 떠난다. 굳이 왜 이걸 해야 하나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데 사명감으로 뭉친 조직의 리더는 다르다. 진짜 존경을 받고 힘든 걸 뚫고 나온다. 사람들이 남는다. 나중에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그때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저 형 때문에…'라고 한다."


투자의 언어는 숫자…해외 진출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

물론 의리와 사명감만으로 사업이 되는 건 아니다. 스타트업 대표가 갖춰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은 투자자의 언어인 숫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규모와 단계를 높여갈수록 숫자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본에 가면 일본말을 써야 하는 것처럼 투자받으려면 결국은 플러스, 마이너스 숫자로 말해야 한다. 흑자와 적자다. 기업은 파워포인트로 시작하지만 엑셀로 끝난다. 내가 생각하는 비즈니스를 숫자로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돈을 만지는 사람들은 숫자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창업자들이 이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회사의 가치를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스파크랩은 스타트업 해외 진출을 돕는데 강점을 가지고 있는 AC다. 스파크랩이 투자한 총 270여개 기업 중 40여개가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미미박스, 더블미, 클로아 같은 스타트업은 스파크랩의 도움을 받아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어반베이스, H2O호스피탈리티 같은 스타트업은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호텔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H2O호스피탈리티는 해외 자본이 모이는 중동 시장에도 진출했다.


"회사가 진정한 영향력이나 가치가 있으면 해외로 가야 한다. 넥슨도 해외 매출이 70%다. 삼성, LG, 현대차도 해외 매출이 훨씬 크다. 스파크랩은 기업을 육성할 때부터 해외로 가야 한다고 주입식 교육을 시킨다. 해외 진출을 하려면 기업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특화된 입시라던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는 글로벌 사업에는 맞지 않다."

김호민 스파크랩 대표. 사진=박소연 기자 muse@

김호민 스파크랩 대표. 사진=박소연 기자 m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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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실패한 회사·무너진 제국을 연구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는 작업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깨어있는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지만 반대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알 수 있다. A 회사는 이래서 망했고, B 회사는 저래서 망했다. 왜 로마가 망했는지, 대기업은 왜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돌아본다. 대제국을 보면 다 제패한 다음에 관리가 안 돼서 다시 쪼개진다. 과거 역사에 지금 있는 현상들을 대입해 본다."


김 대표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의공학과 1990학번으로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등의 외화를 보며 과학자를 꿈꿨다. 미국서 의공학 학사 취득 후 카이스트(KAIST)로 와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인적인 기술을 꿈꾸면서 의공학과에 들어갔는데,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기술이 부족했다. 지금과 같은 소형 센서나 저전력 칩이 없었다. 개념이 틀린 게 아니라 그땐 기술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다. 사업을 할 때도 똑같다. 그때는 왜 안 됐는데, 지금은 왜 가능한지를 알아야 한다. 감이라는 것은 창의적인 것도 있지만 분명 과거에 불가능한 것이 왜 안 됐는지를 분석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창업에 대한 솔직한 조언…미국 평균 창업 연령 40세

김 대표는 스파크랩 창업에 앞서 넥슨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 넥스노바(Nexonova)의 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CCTV 솔루션 개발사 이노티브 최고경영자(CEO), 시스코에서 투자한 사물인터넷(IOT) 솔루션 회사 엔쓰리엔(N3N) 공동창업자를 역임했다. 누구보다 창업자의 심리와 기업의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스타트업이 한국의 미래고, 그 성장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는 우리 사회가 청년 창업을 독려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스타트업 창업도전자 평균 연령이 40세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그걸 해결할 수 있을 때 창업을 하는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유통 구조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 수 있을까. 포스코 고로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경험에서부터 문제 인식이 있고, 해결책도 나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한국 시장의 모습은 창업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보다 마켓이 더 큰 것이 B2B(기업 간 거래)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이 있고, 좋은 교육 시스템도 있고, 삼성·현대 등 전통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 IT 대기업도 있다. 글로벌 회사들 구글이나 메타도 직접 들어와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사람들, 훌륭한 창업자가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창업 환경이 밝다."


천재 프로그래머의 시대는 갔다…인간의 내면 읽고 표현해야

한국 기업들은 그간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 즉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구분도 사라질 것이라고 김 대표는 예견했다.


"코딩도 언어다. 코딩 언어를 잘 쓸 수 있는 사람과 서툰 사람의 차이가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이 언어에 상대적으로 약했다. 하지만 앞으로 생산력은 인공지능(AI)이 책임진다. 챗GPT를 가지고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코드가 나온다. 코딩을 못 해도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 사람들의 내면을 읽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더 잘 만들 수 있다. 서울대나 카이스트 나온 개발자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 창의적인 생각이나 문제점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올 초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베데스타 및 엑스박스 등 산하 게임조직 내에서 약 19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진행했다. 김 대표는 이것이 현재 IT분야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차기작이 굉장히 기대되던 팀들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이제 사람이 게임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300~400명 대규모 팀이 모여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이제 시대의 유물이 됐다. AI가 영화도 만들고 게임도 만든다. 이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다. 큰 변화의 시대가 온다.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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