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복원 탄력 받는다…옛 자취 발견
어도 계단, 기단부 등…변화 과정도 파악
문화재청 10월까지 복원 공사 마무리
일제강점기에 전차 철로가 놓여 땅속에 파묻힌 광화문 월대가 약 100년 만에 양지로 나왔다. 최근 발굴조사에서 복원까지 이어질 옛 자취가 발견됐다. 어도(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 계단, 기단부 등이다.
광화문 월대 복원·정비를 추진하는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발굴 성과와 복원 계획을 25일 공개했다.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등 주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에 있었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조선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에는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있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약 4만 짐에 이르렀다'고 설명돼 있다. 1890년대 사진 자료에 따르면 구조는 기단석과 계단석,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운 형태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규모는 길이 48.7m, 폭 29.7m. 2005년 발간된 '경복궁 광화문 원위치 복원 및 주변 정비 기본계획' 보고서에서 추정한 52m, 29.5m와 다소 차이가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월대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동편을 통해 경복궁 중건 시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핵심인 어도는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폭 7m의 통로로 밝혀졌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했다고 판단된다.
건축 방법은 길이 120∼270㎝의 잘 다듬어진 장대석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내부에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남쪽에는 장대석 이용해 계단을 조성했다.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에는 소맷돌을 사용해 계단의 좌·우측을 장식하고 분리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어도 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에 의해 일부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월대는 축조 뒤 크게 네 차례 변화했다. 1단계에서는 남쪽에 세 부분으로 나뉜 계단이 있었으나 2단계에서는 가운데 부분의 어도 계단이 경사로로 바뀌었다. 3단계에서 계단은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단선(외줄) 형태의 전차선로가 설치된 영향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복선(겹줄)화돼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도로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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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올해 10월까지 복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작업에는 1920년대 해체된 뒤 경기 구리 동구릉 등으로 옮겨졌다고 여겨지는 난간석, 하엽석(荷葉石·난간석 아래에 일정 간격으로 둔 연잎 모양이 조각된 받침석) 등 부재를 재사용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통 재료와 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할 예정"이라며 "올해 가을 궁중문화축전에서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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