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비혼자는 출산을 원치 않을 것이란 편견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을까"
방송인 사유리 사례, 용기 얻는 여성들
지금까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가족'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져 왔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기본단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인 가구, 동거커플, 동성 커플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면서 이에 따른 가족의 의미 재정립과 법적·제도적 보완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하지 않은 비혼 상태의 인구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여성의 '비혼 출산'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인 방송인 사유리씨가 정자 기증을 받아 비혼 출산을 한 소식은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사유리씨의 임신과 출산은 혼인 관계의 출산만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던 전통적인 가족관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아가 1인 가구 또는 비혼자는 출산을 원치 않을 것이란 고정관념과 이들의 출산을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인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이런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비단 사유리씨 뿐일까? 비혼자들은 정말 출산을 원치 않을까? 이들이 출산을 원한다면, 왜 결혼이라는 안전한 사회의 울타리가 아닌 어려운 길을 택하게 된 걸까?
서울에 거주하는 31세 직장인 김모씨는 2021년 난자동결 시술을 받았다. 김씨는 현재 비혼 상태다. 김씨는 엄밀히 말해 비혼을 지향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생각할 땐 언제나 확고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서 꼭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혼 여성들이 당장 출산하지 않고 난자동결을 결심하는 이유는 출산·양육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과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와도 관련이 있다. 당장은 아이를 낳기 힘들지만 향후 경제·환경적 여건이 갖춰졌을 때 출산을 원하게 될 수도 있기에 가임력 보존 차원에서 난자동결 시술을 택하는 것이다.
김씨는 "어렸을 땐 확고했던 가치관이 나이가 들며 바뀌는 걸 경험해보니 지금 결혼·출산 생각이 없더라도 5년 후, 10년 후에는 달라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커리어적으로 성취를 이루면 그땐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의지나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비혼 출산 현실은?…차별적 인식, 제도 미비
"윤리적·법적 쟁점 논의 진행돼야"
2021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시 거주 20~60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40대 여성 26.2%는 '비혼 출산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연령별로는 30대 비혼여성의 32.7%, 40대 비혼여성은 28.4%가 비혼 출산을 생각해 본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조사의 전체 응답자 64.2%는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고, 63.9%는 '혼외자 용어 폐지'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비혼 출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실제 난자동결 시술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제도적인 뒷받침은 미흡하다. 사유리씨 사례에서도 확인되었듯, 국내에선 비혼여성이 난자동결 시술을 받아도 정작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임신 준비 과정에서 가로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혼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아 출산하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윤리지침은 법률혼·사실혼 부부에게만 보조생식술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고 대부분 병원이 지침을 따르고 있다. 비혼여성이 난자동결 시술을 하더라도 결혼 또는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없다면 공식적인 루트로 임신·출산을 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김씨는 "난자동결 시술을 받기 전 산부인과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갔을 때 난자동결 권유와 함께 결혼계획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물어왔다. 나중에 결혼해서 임신을 못 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 그 부분은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병원에서는 비혼여성에게도 난자동결을 적극적으로 권하지만, 향후 출산 시 전제 조건은 당연히 혼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했다.
기증 정자 등을 통한 비혼여성의 출산이 사회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선 이를 둘러싼 윤리적 쟁점에 대한 논의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여성의 출산은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보장되어야 주장과 어느 정도 충돌하는 지점이다.
다만 비혼여성의 출산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태어난 아이의 권리와 정자 기증자 보호 등 파생될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신중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선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비혼 출산의)과정 자체가 생명 윤리나 부권, 모권 등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다양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며 "보조 생식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윤리적, 제도적인 부분들이 앞으로 함께 얘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여가부)는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이 화제가 된 뒤 2021년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혼 출산의 법적, 윤리적 쟁점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비혼 가구 등 다양한 가족 유형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가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가족 정의에 대한 정부의 기조가 바뀌면서 비혼 출산에 대한 논의 역시 표류하고 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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