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 묘연한 ‘실형 확정자’ 5년새 최대… '법치주의' 무너지나
검수완박 법안에 檢 '형집행 기능' 빼면, 유죄 확정된 범죄자 활개
'형집행 노하우' 사장 우려… 법조계 "소재 파악 위한 법 개정 필요"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형이 선고된 뒤에도 신병이 확보되지 않아 형을 집행할 수 없는 ‘자유형 미집행자’가 지난해 2000명을 넘어섰다.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법 집행을 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애초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검찰의 형집행 기능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는 빠졌으나, 최종 개정안에는 검찰의 형집행 기능을 없애는 조항이 반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이 경우 국가형벌권 행사에 막대한 장애를 초래할 전망이다.
27일 아시아경제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유형 미집행자는 2347명(국내·외 도피 포함)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17년 1363명에서 2018년(1440명), 2019년(1470명), 2020년(1964명)으로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증가 추세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이나 금고 등을 선고받았지만, 당사자가 종적을 감춰 버리는 바람에 형집행이 보류된 경우를 말한다.
자유형 미집행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은 법원이 불구속 또는 궐석 재판을 확대하면서, 실형이 확정된 후에야 집행 대상자가 돼 미집행자 전체 인원 증가로 이어진 탓으로 보인다.
법원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강조하면서 불구속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실제 1심 형사공판사건의 구속 인원은 2017년 2만8728명(10.9%), 2018년 2만4876명(10.4%), 2019년 2만4608명(10%)으로 꾸준히 감소하다, 2020년 2만1753명(8.4%)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검찰은 도주 방식 지능화로 인해 자유형 확정자에 대한 소재 파악에 어려움이 많고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검거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어 미집행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도주한 자유형 확정자를 검거하기 위한 강제수사를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형집행을 위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근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어 신용카드 내역, 계좌 추적 등 가장 확실한 수단을 쓸 수 없고, 압수수색 영장 없이 가능한 통신조회와 위치추적 등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검거활동이 이뤄져야 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수완박으로 인해 검찰의 형집행기능이 사라질 경우,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들의 도피가 더욱더 원활해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 수사관이 사법경찰관리의 지위에서 형미집행자의 형집행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검찰의 형집행 기능이 사라지게 되면 70년간 축적된 형집행 노하우가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해외 도피자의 경우 검거 확률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약 80여개국)에 한해 해당 국가의 사법시스템과 절차에 따라 해당국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유형 확정자를 인도받아야 하는 이유에서다. 실제 하이마트 매각 과정에서 회사에 수천억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실형이 확정된 선종구 전 롯데하이마트 회장은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인 작년 8월 미국으로 출국해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선 전 회장의 여권을 말소하는 한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요청해 적색수배령을 발령한 상태다.
신병확보를 위한 검거 인력이 부족한 것도 자유형 미집행자가 늘어나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등 규모가 큰 검찰청은 검거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청급의 소규모 검찰청은 1~2명의 수사관이 검거를 전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장에서는 "병사도 없는데 무기까지 없이 전장에 나가서 싸우라는 것밖에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사단계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보호를 받는 피의자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는데, 유죄가 확정된 이들의 검거를 위한 강제수단이 없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한 수사관은 "병원 진료 내역은 물론이고 CCTV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다"며 "검거과정에서 최소한의 자료 확보를 위해 읍소를 하는 것은 다반사고, 이마저도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추징금이나 벌금 등 ‘재산형’ 집행에도 문제가 있다. 재산형 집행 역시 계좌추적을 위한 영장이 발부되지 않아 범죄수익을 환수하는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벌금미납 지명수배자는 지난해 기준 9만5363명에 달한다.
재산형 집행은 재산형 확정자의 금전 흐름을 파악해 찾아내는 싸움인데, ‘재산 저수지’인 계좌를 확인할 길이 없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셈이다. 계좌추적을 위한 장치가 없다 보니, 부동산이나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재산 내역을 일일이 확인하고 재산형 확정자의 계좌를 압류하는 ‘원시적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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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활한 자유·재산형 확정자의 형집행을 위해서는 압수수색 영장 발부 등 형집행 대상자의 소재 파악을 위한 근거 규정 신설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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