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장선거' 메가폰 잡은 배우 박정민
초등학교 시절 경험 바탕, 각본 쓰고 연출
언어폭력·따돌림 등 우리 사회 현주소 투영
"연기했던 시간 되돌아보게 돼…고민 많아져"

[라임라이트]아이들 세계 갈등, 어른들 시선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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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반장선거. 투표 전 후보들이 교탁에서 공약을 밝힌다. 정인호(김담호)는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그는 다른 후보 유장원(강지석)의 강요로 출마했다. 부정선거를 의심받지 않으려는 속셈에 이용당한다. 따돌림을 피하려고 내린 선택이지만 고민 끝에 내놓은 공약만큼은 진심이다. "제가 반장이 된다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서비스되는 영화 ‘반장선거’는 배우 박정민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밑바탕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경험. 서로를 시기하고 헐뜯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영화 구상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언어폭력, 따돌림, 집단의식 등으로 점철된 사회적 관계를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담아냈다. 시청자의 유년기를 환기하며 우리 사회를 집어삼킨 극단적 불화와 소외를 가리킨다. 박정민은 "격화하는 대립과 갈등은 어른은 물론 아이들의 세계에도 늘 있었다"며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현상을 어른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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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반장선거 때 무슨 일이 있었나.

"후보로 나선 친구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지지하는 친구들도 강성이었다. 개표가 끝날 때까지 소리를 질러대 무서웠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당시 경험을 떠올리다 초등학생이 마냥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시기에 거짓말도 많이 하지 않나. 그런 특성들을 부각해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투영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을 했던데.

"사실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두 번이나 전학을 가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그렇게 5학년을 맞았을 때 학교에 장학사 방문이 예고됐다. 선생님께서 교실을 예쁘게 꾸미라고 시키셨다. 나는 가족신문을 만들었다. 세 살 때 사진을 붙였는데 친구들이 귀엽다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와 운동도 나름 잘하니까 자연스레 인기가 높아졌다.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였다(웃음)."

-당시와 현재 초등학생 문화에는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시기를 특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왓챠 시청자 대다수가 20~30대다. 이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즘 초등학생들의 문화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약 20년을 관통하는 특징들을 물어봤다. 그렇게 마련한 소품이 우유와 분필이다. 촬영도 경기도 시흥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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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의 소외감을 강조하는 공간으로 어두운 창고를 활용했다.

"시나리오에서는 구령대나 조회대 밑에 있는 창고였다. 사전답사해보니 공간이 너무 좁았다. 낙심했는데 제작팀에서 영화에 나오는 창고를 찾아 알려줬다. 반지하에 층고도 낮아서 정인호의 외로움이 잘 나타날 듯했다."


-첫 장면이 흥미롭다. 음지 속 정인호는 밝게, 양지 속 유장원은 어둡게 나타난다.

"암흑 속 순수함과 볕받이 속 어둠을 대조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정인호는 부정선거에 가담하면서 양달로 나온다. 하지만 그곳에도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굴다리와 더불어 영화의 핵심 장면이라 콘티대로 정확히 계산해서 촬영했다."


-다양한 신에 힙합 음악을 넣었던데.

"선거운동 신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오랫동안 문제가 안 풀렸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와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라디오에서 ‘나는 이영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거야’ 하고 무릎을 쳤다. 완급만 조절하면 초등학생들이 장난치는 모습과 잘 어울릴 듯했다. 바로 마미손에게 부탁했고, 좋은 곡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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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네 명(김담호·강지석·박효은·박승준)을 제외한 단역 스물세 명의 연기는 어떻게 유도했나.

"사전에 한 명당 30분~1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등을 묻고 연기에 반영했다. 예컨대 태권도를 연마하는 친구에게는 태권도복을, 독서를 즐기는 친구에게는 책을 준비하라고 부탁했다. 어떤 역할이고, 무슨 연기가 필요한지는 따로 종이에 적어서 알려줬다. 하나같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길 바라서다. 동행한 부모님들께도 꼭 필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각자 맡은 임무를 잘 해내서 촬영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편집에서 모든 친구의 얼굴을 담고자 했다. 이 영화가 그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길 바랐다."


-주연인 김담호의 경우 세밀한 연기가 필요했을 텐데.

"정인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촬영하는 도중에 옆으로 다가가 정인호의 심경을 시시각각 말해줬다. 내 목소리는 후반 작업에서 지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박용기 사운드 수퍼바이저께 많이 미안했다."


-유명한 아역 배우를 섭외하지 않았는데.

"그런 친구만 돋보이는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독립영화에서만큼은 다른 아역 배우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에는 출연할 친구들만 불렀다. 연기를 보여주고도 탈락하면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듯했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은 탈락을 예상했는지 밖에서 자책하며 울더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한 번에 합격하는 경우가 없어 다들 빈말인 줄 알았다고 한다.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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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경험이 연기 또는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배우는 물론 모든 스태프와 소통하며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거기에 맞춰 이뤄지는 모든 노력이 감동적으로 다가와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다. 특히 생각지도 못한 연기가 나올 때는 감탄사까지 내뱉었다. 배우로서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 이상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후 작품으로 만난 감독이 박찬욱과 류승완이다. 워낙 대단한 분들이라 주문한 대로만 잘 이행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근래 배우로서 고민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믿어온 연기가 정말 맞는 건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걸어온 길을 차분히 돌아보고 드라마 '머니게임'을 준비할 생각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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