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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감사원 보고서가 '지적'이 아니라니…중기부는 갑옷이라도 둘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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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저희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한 간부가 단호한 어조로 기자에게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중기부 취재지원실에서 열린 추가경정예산 편성 관련 사전브리핑 자리에서다. "감사원의 보고서가 버젓이 나와있는데 무슨 말씀이냐. 제가 보고서를 보내드리기라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으나 '지적을 받은 바 없다'는 데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대답이 거푸 돌아왔다.


중기부는 이날 추경에 따른 1조2800억원 규모의 추가 지원예산 집행 계획을 브리핑했다. 이 가운데 2157억원은 창업기업의 판로확보를 포함한 마케팅 등의 지원 예산으로 책정돼있었다. 기자는 브리핑을 듣던 중 감사원이 지난 달 내놓은 '중소기업 판로지원사업 추진 실태' 특정감사 보고서를 떠올렸다. 중기부의 판로지원 사업에 문제가 없는지를 감사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38페이지짜리 보고서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중기부 정책의 연계성이 미흡해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고 있는 점 등 총 5건의 위법ㆍ부당사항 및 제도개선 사항을 확인해 처분요구 및 통보 조치했음을 밝히고 있다. 제품발굴부터 유통망 진출까지 일괄지원이 필요한데도 마케팅 역량강화 지원사업과 유통망 진출지원 사업 간 연계가 되지 않아 중소기업혁신제품의 유통망 진출이 좌절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감사원은 아울러 ▲온ㆍ오프라인 연계 미비에 따른 시너지 저감 ▲기술개발 성공기업에 대한 온ㆍ오프라인 유통망 진출 지원 미흡 등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몇몇 중소기업들에 대한 별도의 취재를 바탕으로 한 실례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추경으로 관련 예산이 대거 추가됐는데, 혹시 감사원 지적사항에 따른 지원사업 정비나 조치를 한 바가 있느냐, 적은 돈도 아닌데 제대로 쓰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던 거다.


이런 마당에 '지적을 받은 바가 없다'는 대답을 들으니 기자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깃장을 놓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정식 브리핑이 끝난 다음 그 간부를 찾아가서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 이해가 안 된다, 보고서를 보시긴 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 중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몇몇 관계자는 '지적사항'이라는 명목의 문서가 아니어서 그랬을 거라고 귀띔했다. 모든 영역에서 그러하듯이,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도 그들만의 언어라는 게 존재할 것이다. 존중해야겠지만, 이게 상식선에서 너무 많이 어긋나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 최고위 공공 감시기관인 감사원이 실례까지 담아서 작성한 수 십페이지짜리 보고서가 '지적'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지적이란 말인가. 이 보고서에 근거한 언론의 질문에도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현장의 목소리에는 어떻게 반응할 지 넉넉하게 짐작이 된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이날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를 열어서 "중기부는 민간과 정부 내지는 정부 부처를 연결하는 메신저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자가 만난 중기부 간부의 언행은 장관의 당부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것이 중기부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밀주의, 면피주의, 행정만능주의, 조직이기주의라는 커다란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고 누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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