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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유토피아로 가는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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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대학 취업전문가 강연회에 참석했다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대기업들이 출신대학을 고려하지 않는 블라인드 전형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 결과 오히려 명문대학 졸업생들의 채용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학력사회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도입한 블라인드 전형이, 바로잡고자 했던 바로 그 현실을 강화시켰다는 증언이다. 블라인드 전형 이전에는 입사지원서를 보고 상위대학과 하위대학, 수도권과 지방 등의 균형을 의도적으로 맞출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것도 불가능하다.


세상일은 군사작전처럼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뜻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대출규제를 강화했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분양가가 얼마인가. 30평형대가 9억원이다. 이 많은 현금을 즉각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 청약당첨자들은 전세금을 빼고 모자란 돈은 대출로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대출 문이 꽁꽁 닫혀 있다. 분양계약을 포기한다. 서울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의 경우 당초 419가구가 분양됐는데 41.5%인 174가구가 계약을 포기했다.


탈원전 정책도 좋은 예다. 탈원전 정책의 의도는 분명히 선하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기억은 생생하다. 원전이 없으면 그러한 사고도 없다.


그러나 당위에 몰입된 정책은 언제나 부작용을 낳는다. 원전 비중을 낮추고 미세먼지 때문에 석탄발전도 줄여야 하니 발전단가가 높아진다. 지난해 한국전력을 비롯한 에너지공기업은 대규모 적자를 감내해야 했다. 세금으로 메우지 않는 한 전기요금 인상은 이제 시간문제다. 전기 값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하겠지만 발전용 원자로가 한 대라도 남아있는 한 위험은 상존한다. 원전 수가 적다고 안전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의도한 효과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음이 많은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상세한 설명도 필요 없다. 정부만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국가경영에서 최대 난제는 정책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해도 이것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수요공급의 법칙처럼 공식화된 법칙이라는 게 없다. 정책의 결과는 캄캄한 암흑 속이다. 아무리 유토피아를 꿈꾸고 좋은 의도로 좋은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대부분 현실에서 부정당한다. 이 세상에는 유토피아가 없으며 앞으로도 유토피아는 없다.


최선의 대응방법은 분명한 '결과목표'의 설정이다. 정책을 평가할 잣대를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이라면 소득하위 1분위 계층의 근로소득을 얼마나 늘리겠다는 목표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정책을 잘 디자인했다면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각종 경고음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현대적 정부에서 좋은 정부, 나쁜 정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부 내 일부 일탈은 있을지언정 정부가 국민을 볼모로 삼아 국가를 의도적으로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선한 의지를 갖고 국가를 운영한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같은 폐쇄적 세습적 독재국가가 아닌 한 그렇다.


단지 유능한 정부와 무능한 정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유능한 정부는 정책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이를 즉각 교정한다. '의도'보다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능한 정부는 실패한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의도'에 맞춰 '결과'를 왜곡함으로써 자기합리화시킨다. 정책성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더 세게 헛발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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