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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웃음과 유머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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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실수로, 생존하는 내내 창조의 계획을 즐겁게 위반하는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지구는 고독하고 무의미하게 우주 속을 질주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공룡과 양서류는 몰랐던 것을 건져냈다. 웃음과 키스, 환호, 그리고 긍정이다.

-볼프 슈나이더 '진정한 행복'



■인류의 경이로운 발명품, 웃음

이용범 소설가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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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사람처럼 웃을 수 있을까? 개는 반가울 때 숨을 헐떡이고 유인원들은 장난을 치며 킥킥거린다. 쥐도 간지럼을 태우면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초음파로 재잘거릴 뿐 아니라 간질이는 시늉만 해도 촉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 된다. 심지어 더 간질여 달라는 듯 사람 가까이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쥐를 높은 곳에 올려놓고 빛을 비추면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는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간지럼을 타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런데도 포유동물이 간지럼을 타는 것은 구성원끼리 스킨십을 하면서 유대감을 높이는 것이 무리 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자신의 어린 자녀들을 관찰한 후 생후 55일에서 65일 사이에 아이가 웃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눈이나 귀가 먼 채 태어난 아이들도 웃음을 짓는다. 이는 웃음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음을 뜻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생후 3~18개월 된 아이들의 웃음은 다른 영장류의 웃음과 유사하다. 어린아이의 웃음은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고, 한 번 터진 웃음을 멈추기도 어렵다. 침팬지처럼 들숨에도 웃고 날숨에도 웃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럴 수 없다.


웃음을 유발하는 뇌 영역은 1989년 간질을 앓고 있는 16세 소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뇌 깊숙이 자리한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자지러지는 웃음을 유발하고,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은 얼마나 웃기는 상황인지를 판단한다. 또 'A10 영역'으로 불리는 왼쪽 보조운동영역(supplementary motor area)은 웃는 행위를 담당한다. 최근에는 대상 다발(cingulum bundle)로 이어지는 신경섬유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뇌 전체를 동원해야 웃음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다른 포유동물과 달리 인간의 웃음은 신비롭다. 인간은 웃을 뿐 아니라 '웃길 줄 아는' 동물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헛웃음, 비웃음, 냉소, 억지웃음을 지을 줄 안다. 이런 웃음은 타인의 행위에 공감하지 않거나 억지로 동의할 수밖에 없을 때 나타난다. 그래서 인간의 웃음은 독특하다. 유인원들도 웃을 수는 있지만 동료가 나무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을 때도 웃음을 터뜨릴 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왜 웃는가?


앙리 베르그손

앙리 베르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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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은 웃음이 일종의 '사회적 몸짓'임을 확신했다. 그가 제시한 사례를 보자. 거리를 걷던 사내가 갑자기 넘어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만일 사내가 애초부터 땅바닥에 주저앉을 생각이었다면 사람들은 웃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사내가 발을 잘못 디디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대를 저버린, 즉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상황을 접했을 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코미디의 구조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코미디는 관객의 기대를 부풀리며 긴장감을 높여 가다가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난다. 이때 관객은 사건의 맥락을 재해석하는데, 대개 반전의 맥락은 공허하고 허무하다. 엉뚱한 답을 가진 난센스 퀴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사건의 맥락이 단순하면 저질 코미디가 되고, 맥락이 복잡하면 고급 유머가 된다. 만일 기대했던 대로 사건이 흘러가면 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무대 위를 천천히 걸어가면 아무런 사건도 아니지만 느닷없이 물벼락을 맞으면 코미디가 된다. 웃음은 기대가 갑자기 무너진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거짓경보이론(false alarm theory)'으로 설명한다. 길에서 넘어진 사내를 다시 떠올려보자. 만일 그가 밀림에서 사냥을 하다가 갑자기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는 늪에 빠지거나 악어에게 다리를 물렸을 수도 있다. 동료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설사 때문에!"라고 말한다면 금세 웃음이 터질 것이다. 뒤따르던 일행 역시 이 웃음을 안전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악어의 이빨에 잘려나간 동료의 시신이 주변에서 발견된다면 누구도 웃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웃음은 긴장된 상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을 유발하는 신호가 거짓임이 드러났을 때 웃음을 터뜨리며 무장 해제된다.


웃음은 안전과 평화, 그리고 신뢰의 신호다. 개들도 다른 개가 웃는 소리를 들으면 긴장을 풀고 장난을 치기 시작하며, 으르렁대던 개들은 싸움을 멈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조상들에게 잠시 긴장과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한 신호가 바로 웃음인 것이다. 웃음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이며 경이로운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혼자 있을 때보다 30배나 더 많이 웃는다. 또 웃음은 쉽게 주변을 전염시킨다. 우리는 우스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는다. 이런 무의미한 웃음이 80%~90%에 달한다고 한다. 웃음은 즐거운 상항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이라기보다 타인과 감정적 배경을 공유하기 위한 사회적 몸짓인 것이다. 사실 자지러지는 웃음은 호흡을 멈추게 할 만큼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웃음을 진화시킨 것은 웃음이 사회적 윤활유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비웃음과 냉소는 타인의 잘못과 실수에 대한 사회적 징벌이라 할 수 있다.



■약자의 위장술이자 무기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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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5-HTTLPR'라 불리는 유전자 길이와 관련이 있다. 이 유전자의 길이가 짧은 사람은 더 많이 웃는다. 웃음은 신뢰감을 주지만 친절한 웃음이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에서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는 점원이나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는 단지 자신이 맡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가짜 웃음을 짓는 데 능숙하다. 미인대회에 나온 여성들의 미소를 보면 가짜 미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웃음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은 뇌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지만, 증명사진을 찍을 때의 웃음은 뇌의 사고영역에서 시작된다.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은 작동하는 신경 회로뿐 아니라 사용되는 근육도 다르다. 우리는 왜 가짜 웃음을 짓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격투기 선수들의 표정을 분석한 크라우스(Kraus)와 첸(Chen)의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웃음을 보인 선수는 패배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때 웃음은 자신이 약자임을 감추기 위한 신호로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자 앞에서 실없이 미소를 짓고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이때 흘리는 웃음은 복종의 신호다. 그래서 약자의 웃음은 때로 권력자의 일탈된 행위를 승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령 권력자가 성적 농담을 건넸을 때 짓는 약자의 어색한 웃음은 권력자의 일탈을 용인하거나 정당화한다.


불편한 감정을 숨기거나 고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도 가짜 웃음이 필요하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억지로 짓는 가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음은 약자들의 무기이기도 하다. 약자는 풍자와 유머를 통해 강자를 희화화함으로써 권력에 대항할 용기를 얻는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을 속일 줄 아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웃음으로 위장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인간은 위험을 모면하고 남을 속이기 위해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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