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가을날의 빨래/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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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한다
 가을날이다
 그늘에 앉아서도,
 너무 맑다
 빨래란
 치대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는 일
 우린 그때 슬펐나
 물에 빨래를 헹군다
 조금만 더, 아니
 빨래를 들어 허공에 털어 본다
 생각이 우수수 떨어진다
 추석이 가까운데 아버지는 어디쯤 오시나
 그때 우리는 슬펐나
 모든 말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빨래란 지독한 명상에 가깝다
 안해는 지금쯤 몽골의 사막을 지나고 있을까
 쌍봉낙타를 타고 챙이 커다란 모자를 쓰고 휘파람을 불 때
 나는 한 손 위에 다른 한 손을 얹고 빨래를 문지른다
 이 지극한 자세로
 가을에 도착했을 때
 신도 나를 빨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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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간혹은 산책을 나서기 전에 아직 쓰지 못한 문장 하나를 중얼거리면서 그다음을 이어 봐야지 이런 욕심을 내 보기도 하지만 좀 걷다 보면 어느새 잊어 먹곤 한다. 대신 낙엽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불현듯 "별별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날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에 서 있던 동상은 무엇이었더라, 그 친구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그때 우리는 슬펐나"... 밀려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앞선 생각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그래서 산책은 차라리 "지독한 명상에 가"까워진다. 빨래도 그런가 보다. 오늘은 세탁기 앞에 앉아 손빨래나 좀 해야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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