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변론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난다"며 울컥하기도

[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서울 시내 한 법원에 소속된 김모(49) 국선변호사는 지난달 30일에도 야근을 했다. 저녁 6시에 칼퇴근을 해본 것이 언제인지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하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귀가해서 '잠들지 않은' 아이들 얼굴이라도 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날 낮동안 김 변호사는 오전 4건, 오후 2건 등 6건의 재판에 참석했다. 많을 때는 하루 10번 넘게 재판정에 나갈 때도 있다. 매달 30여건의 사건을 새로 배당받다보니 맡고 있는 사건은 늘 100건을 넘는다. 솔직해 몇 건이나 되는지 세어보기도 겁난다.

오후 2시와 4시에 열렸던 재판 사이에는 잠시 짬을 내 새로운 사건의 피고인을 면담했다.공무원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할머니 피고인은 김 변호사를 붙잡고 한 시간 가까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몇 살 때 시집을 왔고, 얼마나 가난했는지 등의 얘기부터 사건 당일 자신에게 얼마나 재수없는 일이 일어났었는지 등등...


"할머니, 그것도 중요한데요, 감옥을 가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어쩌다 때리게 된 것인지 말씀해 보세요"라며 화제를 사건으로 돌려보려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내 말도 안들어 줄거면서 뭔 변호사를 한다는 거야"라는 호통을 들었다. "재판에 늦겠다"며 눈치빠르게 끼어들어준 동료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적잖히 곤란했을 뻔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 할머니 피고인은 제시간에 나타나줬다는 것. 면담 시간에 늦거나 펑크를 내놓고 나중에 나타나 '왜 만나주지 않느냐'며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금요스토리] 국선전담변호사 ‘김변’의 야근... 연이은 재판·피고인 접견 등에 서면검토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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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과 같은 국선전담변호사는 현재 전국 각급 법원에서 약 2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각급 법원마다 적게는 10여명 많을 경우 50여명이 배치된다.


최근 사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선 변호인들을 대신해 변론을 맡게 된 조현권(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 등도 모두 국선전담변호사들이다. 이들은 다른 사건을 일체 맡지 않고 이 사건에만 집중한다. 국선변호사의 세계에서 이처럼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 한 사건에 투입되는 것은 전례도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앞으로도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현재 국선변호사는 크게 세 가지로 운영된다. 김 변호사처럼 법원에 소속돼 전적으로 국선 변호인을 맡은 '국선전담변호사'가 있고, 평소에는 다른 변론활동을 하다 법원의 지정에 의해 국선변호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은 국선 변호사들은 모두가 국선전담변호사다. 최근에는 영장신청 단계부터 변론활동을 하는 공공형사변호사 제도가 생겼다.


이처럼 국선변호사 제도가 다양하게 생긴 것은 2004년부터 시작된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조기에 성공적으로 정착됐기 때문이다. 업무량이 일반 변호사들에 비해 6배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지만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인기는 매년 빠르게 높아가고 있다.


2004년 10여명을 시작된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는 한때 변호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지원자가 많아지며 2015년에는 경쟁률이 9대1에 육박하기도 했다.


인기는 높지만 업무량은 만만치 않다. 일반변호사의 6배에 달하는 업무량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법원에 따르면 이들 국선전담변호사들에게는 매달 30여건의 사건이 배당된다. 통상 형사사건이 3~6개월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변호사 1인당 감당하는 사건수는 100여건을 훌쩍 넘는다.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모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우 하루 16번의 재판에 참석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요스토리] 국선전담변호사 ‘김변’의 야근... 연이은 재판·피고인 접견 등에 서면검토 못해 원본보기 아이콘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건기록을 검토할 시간이나 서면을 작성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 법정출석과 피고인 면담을 하다보면 낮에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보니 상당수 변호사들은 야근을 자청하는 실정이다.


"밤시간이 상대적으로 조용해 집중하기 좋고 업무효율이 높다"는 변호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가족들과 서먹서먹해진다는 고충을 털어놓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럴 때마다 국선전담변호사들은 의뢰인들로 부터 받은 편지나 조그만 선물 등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 노하우가 있다. 김 변호사만 해도 책상 속에 고이 모셔둔 '꽃편지'가 있다.


사기사건 피고인으로 1심에서 실형선고를 받았는데 김 변호사의 도움으로 항소심에서 대부분 무죄판결을 받게 되자 답례로 예쁜 꽃 그림을 그려 편지를 보냈다. 의뢰인들로부터 별도의 사례를 받을 수 없는 국선전담변호사들이지만 정성이 가득담긴 작은 선물은 도저히 물리칠 수 없다.


하지만 의뢰인들이 항상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국선전담변호사의 조력을 받은 피고인들이 70%이상이 만족감을 표시했다는 통계가 있지만 만족하지 못한 30% 가운데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다.


김 변호사만 해도 구치소에 수감된 피고인을 접견하러 갔다가 의자로 내리찍힐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한다 '는 편지를 보내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는 피고인 때문에 변호인을 사임했던 여성 변호사도 있다.


이런 경험을 당한 변호사들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하지만 명색이 변호사다 보니 어디가서 속시원히 하소연하기도 어렵다고... 게다가 다른 의뢰인을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속으로 곪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변호사들의 전언이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힘들긴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인이 느끼는 보람만큼은 법조계 어느 직역보다 크고 강하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자가 되고 싶다던 고시생 시절의 꿈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진다는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


업무량이 상당하고 의뢰인들 대부분이 경제적ㆍ사회적 약자이다 보니 변호사이면서도 상담사나 사회복지사가 되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국선전담변호사들은 그런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 말하는 '김변'이 있을 정도다. 의뢰인들을 만나다 보면 평생 힘든 일만 하시다 돌아가신 부친이 떠올라 울컥할 때가 있다"는 국선전담변호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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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법조계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정착단계에 접어들면서 대법원은 변호사 수를 늘리는 등 제도 개선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성범죄피해자 조력인 등 국선변호사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도 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 단체에서는 국선전담변호사의 선발과 운용 등 인사권을 법원이 갖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변론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선발권을 변호사 단체나 공익기관으로 넘기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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