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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는 지금] 美 총기규제 안 되는 이유…NRA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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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총기협회(NRA) 홈페이지 화면. 웨인 라피에르 최고경영자(CEO)가 총기소지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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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반자동 소총을 완전 자동소총과 같은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장비(범프스탁ㆍBump stock)는 추가 규제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전미총기협회(NRA)가 예상을 깨고 총기 개조 규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소총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범프스탁'이라는 부품을 쓰면 반자동 소총도 자동소총이 된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의 법인인 스티븐 패덕은 이 장치를 10만원 정도에 구입해 자신의 소총을 분당 800발까지 연속 발사할 수 있는 '기관총'으로 바꿨다.

NRA의 이례적인 성명에 미국사회는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만 보이면 강력하게 반대했던 단체가 먼저 성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NRA는 곧 성명에 대해 부연설명을 달았다. 범프스탁도 일부 규제이지 '금지'는 아니라는 것. 이번 참사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 탓이라는 비난도 덧붙였다. 2010년 미국 연방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이 범프스탁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렸는데, 당시 ATF가 범프스탁이 총기규제와 관련된 연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NRA는 이 사실을 지적하며 ATF 측이 관련 규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실상 ATF 측으로 공을 떠넘긴 것이다.
웨인 라피에르 NRA의 최고경영자(CEO)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총기를 규제하려 하려는 민주당을 지적하기도 했다. 라피에르는 "엘리트층은 언제나 총기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몸을 사리면서 대중에게는 총기 사용을 경계하라고 한다"고 비난했다. 또한 "국가가 보장하는 무기소유 권리를 수호하고 국민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NRA가 존재하는 이유"라며 총기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NRA의 성명과 부연설명을 본 미국인들은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이다. NRA가 먼저 이례적인 성명을 내놓았던 것도 한 발 앞서 체면치례는 하되, 결국은 본인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방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 총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NRA는 침묵을 이어오다 책임이나 탓을 돌릴 상대를 찾은 뒤 성명을 냈다. 잇따른 총기 사건에도 왜 미국은 총기규제를 할 수 없을까. 수십명씩 희생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도, 미국 의회가 총기규제법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범프스탁

범프스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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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할 권리' 헌법서 보장= 미국에서는 헌법이 개인의 총기 소지권을 보장한다. 1791년 연방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경계해 제정된 수정헌법 1조부터 10조를 미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부른다. 이 중 2조가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 즉 무장의 권리다.
이 헌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공권력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무기 소유와 민병대를 통해 독재와 국왕, 상비군으로부터 자유를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기 식민지 개척과 독립전쟁, 서부개척 등 미국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총기가 역할을 했다는 관점이 담겨있다.

다양한 민족이 혼합된 문화도 총기를 허용한 이유가 됐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배경,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니 이 과정에서 논쟁과 이견이 항상 발생하고 이로 인한 불안감을 상쇄하고자 도구가 총기였던 셈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공권력이 높아진 만큼, 이제는 총기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총기구매 규제, '범프스탁'과 같이 불필요하게 여러 발을 쏠 수 있는 총기구매 규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럴 때마다 총기 규제에 적극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NRA다. 올랜도 클럽 사건, 버지니아공대사건 등 미국 내에서 총기난사 사건일 발생할 때마다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지만, 이 때마다 NRA는 총기 소유의 정당성을 적극 대변했다.

◆총기에 희생된 미국인, 전쟁 사망자 수 넘었지만…NRA의 막대한 힘= 지난해 뉴욕타임스(NYT)는 1968년 이래 총기로 인한 사망자 수가 미국이 역사상 참전한 모든 전쟁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비영리단체 '총기 폭력 아카이브(GVA)'에 따르면, 2015년 이래 미국에서 한 해 4만명 이상이 총에 맞아 숨지거나 다쳤다. 올해 들어서도 현재까지 약 1만2000명이 총기로 사망했고 2만4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소유 정당성을 주장하는 NRA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1871년 미 남북전쟁 당시 북부 출신 장교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NRA는 현재 약 50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미국 내 최대 이익집단 중 하나다.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을 회원이다. 막대한 후원금도 확보하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 28명 중 회원인 대통령도 9명에 달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 중 하나다.

NRA가 막대한 힘을 행사하는 비결은 천문학적인 로비 자금이다. NRA는 지난해 대선에만 기부금 각각 318만8000달러와 109만200달러 등을 포함해 총 5868만달러(약 665억원)를 의회 로비에 썼다. 올해 들어 사용한 로비 자금만도 벌써 320만달러에 육박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총기범죄 차단을 위한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는데도 공화당은 물론 백악관도 NRA에 꼼짝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총기 규제,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 일까?= 총기규제 논란이 일 때마다 NRA가 내세우는 논리가 있다. 바로 '미끄러운 비탈길' 논리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한 번 일부 총기에 대해 제한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개인의 총기 소유라는 근본 권리까지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정헌법 2조를 비롯한 미국의 권리장전은 미국인들에게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 논리는 항상 먹혀들었다.

다만 최근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사건은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는 견해가 있다. 다툼이나 논쟁으로 인해 발생한 '무장의 권리'가 작용하지 않고, 32층 건물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브래드 버클 전 ATF 국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NRA가 주장하는 '총을 가졌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모토는 60~100발을 무차별적으로 쏘며 공격하는 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책에 여론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과거 총기의 일정수준 규제가 필요하다고 저서를 통해 밝히기도 했지만, 대선 후보 시절에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무장해야 총기 피해자가 줄어든다는 논리를 폈다. 취임 직후엔 행정명령으로 오바마 시절 도입된 정신질환자 총기 구매 제한법을 폐기했다. 최근 백악관은 NRA가 성명을 내자 "열려 있다"는 모호한 입장만을 내놨다.

미국의 총기규제는 지금까지의 패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CNN은 "워싱턴(의회ㆍ백악관)은 NRA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소한 조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며 "공화당은 라스베이거스 참사의 충격이 사그라질 때까지 의회 일정을 통제하면서 논의를 방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정치 논리와 로비에 계속 휘둘리는 한, 제2, 제3의 라스베이거스 참사가 예견되더라도 총기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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