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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 오랜 뿌리…'권력의 칼날' 그 위험한 유혹

최종수정 2016.12.11 10:10 기사입력 2016.12.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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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청문회에 나온 민원성 질의…힘을 지닌 정치인 요구, 제안인가 압력인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말 평소에 회장님께 부탁하고 싶었던 것을 드리겠다."

6일 국회 본청 245호.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 현장에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의미심장한 얘기를 전했다.

이 의원은 최순실 국조특위 여당 간사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이완영 의원이 얘기를 전한 대상은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된 재계 총수들이다. 신분은 증인이지만, 재계 총수들은 한껏 몸을 낮췄다. 거듭 사과 입장을 전하며 다시는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이날 자리에서 재계 총수들은 '을'의 위치에 선 셈이다. 청문회를 책임지는 한 축인 여당 간사가 평소 회장님께 부탁하고 싶었다는 내용은 무엇일까. 이 의원은 "저는 정부에서 일자리, 취업 문제에 대해서 일을 해 왔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경유착 오랜 뿌리…'권력의 칼날' 그 위험한 유혹

이 의원은 재계 총수들에게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해 힘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의 요구에 한 재계 총수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는 우리 그룹도 많이 신경쓰고 있다"면서 "내년에는 꼭 예정대로 채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날 자리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고자 마련된 자리라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재계 총수들은 의원들이 날선 질의에 긴장하는 상황에서 여당 의원의 '평소 부탁하고 싶었던 내용'이라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기업 입장에서 투자와 고용창출은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할 사안이다. 힘 있는 여당 의원이 요구한다고 계획하지 않았던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날 이완영 의원과 재계 총수들의 대화 내용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오랜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당 간사는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청문회 자리에서도 민원성 발언을 이어갔다. 재계 입장에서는 힘을 지닌 정치권 쪽 인사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거절하기 어렵다. 이번에 9명의 재계 총수들이 국정조사 자리에 나오게 된 배경은 박근혜 대통령의 개별 면담 요구에 응한 결과다.

대통령과 재계 총수의 개별 면담 과정에서 '검은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의문은 가능하지만, 재계 쪽에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는데 재계 총수가 이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권력을 지닌 쪽은 선의로 어떤 내용을 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받는 쪽에서는 압력으로 느낄 수 있다. 권력층의 지원 요구를 거절하거나 소극적으로 대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는 한국의 현대사가 증명하고 있다. 재계 7위 국제그룹 해체는 전두환 정부의 정치자금 지원 요구에 소홀하게 임했다가 빚어진 결과다.

나중에 헌법재판소가 국제그룹 해체로 이어진 정부 판단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면서 명예를 회복했지만, 거대한 그룹 자체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제2의 국제그룹 사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회를 상징하는 깃발

국회를 상징하는 깃발


다른 한편으로는 재계 쪽에서 정경유착을 역이용한다는 시선도 있다. 어떤 지원 요구에 응하는 것은 더 많은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결과라는 얘기다. 한국정치에 뿌리깊은 정경유착은 결국 주고받기라는 기본 골격 때문이라는 게 시민단체 쪽 주장이다.

재계 쪽에서는 "우리는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시민단체 쪽에서는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라고 반박한다.

6일 재계 총수 9명이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돼 28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결과는 한국정치에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정경유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그 시작은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는 유혹에 대한 근본적인 제어장치 마련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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