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개막 연승 신기록 앞둔 압도적 전력, 그럼에도 "훈련, 훈련, 훈련"…이 남자 독종이다
매일 프로그램 바꿔가며 강훈련 "조리사들이 기다리다 지쳐 사표낼 지경"
주장 임영희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요즘엔 농구 재밌어"
"식스맨이던 현역시절 절절함으로 지도...
내일은 어떻게 이길지, 오늘만 보고 산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여자프로농구 춘천 우리은행이 금자탑을 세우기 직전이다. 용인 삼성(17일), 구리 KDB생명(19일)을 모두 이기면 삼성생명(현 삼성)이 2003년 여름리그에서 세운 개막 뒤 최다 연승 기록(15경기)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2011-2012시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들은 꼴찌였다. 2008-2009시즌부터 4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2년 4월 10일 위성우(43)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로 달라졌다. 2회 연속 통합우승에 올 시즌 무패행진까지 달린다. 비결을 묻자 위 감독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훈련, 훈련, 훈련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빨리 달려. 빨리 달리라고."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15일 진행된 오후 훈련. 코트의 뜨거운 분위기는 13연승을 달리는 팀 같지 않았다. 전주원(42), 박성배(40) 코치가 달리기로 몸을 푸는 선수들을 계속 다그쳤다. 그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재던 위 감독도 곧 합세했다. "다시 한 번 빡세게 해볼까." "아니요."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도 하기 전에 선수들은 기진맥진했다.
외국인선수 샤데 휴스턴(28)과 샤샤 굿렛(24)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쁘게 숨을 쉬더니 바로 압박수비를 할 때 필요한 사이드 스텝을 밟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 감독은 어느새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 시범을 보인다. "지금 말 타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위 감독이 사이드 스텝을 거듭 강조한 이유가 있다. 이날 훈련의 초점은 자유투와 수비할 때 맡아야 할 상대가 바뀌었을 때를 대비한 조직적인 이동이었다. 사이드 스텝은 후자를 위한 기본적인 움직임.
위 감독은 "훈련 내용을 매일 바꾼다. 지난 경기에서 드러난 단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두는데,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다보니 선수들이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선수들이 과제를 어느 정도 해낼 때까지 훈련은 끝나지 않는다. 부임 첫 해에 식당 조리사들이 밥을 해놓고 기다리다 지쳐 사표를 던졌을 정도. 충원으로 겨우 일단락됐던 문제를 떠올리며 위 감독은 말했다. "조리사들도 저희 팀원이에요. 선수들이 고생하면 함께 해주는 게 당연하죠." 대화를 엿듣던 정장훈(41) 사무국장이 슬며시 웃었다.
"그때 정말 아찔했죠. 그래도 다행이에요. 올 시즌 훈련에는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어요."
"오늘만 산다"
주장 임영희(34)는 한때 선수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다. "어린 선수들과 훈련량이 똑같으니까 못 견디겠더라고요. 위 감독님의 지도 방식에 적응하느라 애를 좀 먹었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건 통합우승 등의 성과였다. "힘들게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농구가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후배들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이제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어요."
위 감독 역시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부임 첫 해 코치들에게 '총력을 기울여도 성적이 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더 이상 잘해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선수들에게 내세울 명분도 없었을 테지만요." 그는 "사령탑 자리는 늘 불안하다"고 했다.
위 감독은 현역 시절 스타선수가 아니었다. 통산 여섯 시즌을 뛰며 경기당 평균 3.4점을 넣는데 그쳤다. "벤치에서 눈치를 보는 식스맨이었죠. 그것도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든 방출이 될 것 같았거든요." 우리은행에는 그 절실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일단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만 최선을 다한다.
"'어떻게 우승을 할까'를 두고 고민한 적이 없어요. '내일 경기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만 생각하죠. 오늘만 보고 사는 거죠. 그게 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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