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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도 모르는 관가이야기]굿바이 과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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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과천에 와서 86아시안게임을 봤으니까 벌써 26년 전이네요. 보도블럭이 제대로 안깔려서 비만 오면 뻘밭이 됐었는데… 그래도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인 관문공원 앞까지 나가 허름한 함바집에서 밥을 먹었어요. 사당동 포장마차촌은 단골 회식 장소였지요."

기획재정부 기자실장 박미란 사무관의 회고다. 1978년 경제기획원 별정직 공무원으로 첫 출근을 했던 아가씨는 어느덧 공직생활 35년차 관가의 맏언니가 됐다. 박 실장은 "광화문 청사에서 휴지통 하나까지 싸들고 남태령 넘어 이사오던 일이 엊그제 같다"고 했다.
그렇게 30년 세월을 보낸 과천에서 그가 다시 이삿짐을 싼다. 세종시행이다. 이번 주 박 실장은 기자실 게시판에 "12월 14일까지 개인 짐을 모두 챙겨가 달라"고 적었다. 다음달 15일이면 과천 재정부 기자실엔 자물쇠가 걸린다. 기자실을 마지막으로 이사는 끝. 과천 시대의 종언이다.

타의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관가에선 다양한 세종시 증후군이 목격된다.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만 모인다는 재정부 에서도 "요즘처럼 일이 손에 안 잡히긴 처음"이라는 고백이 나온다. 대선 정국, 정책 결정권은 남태령을 넘은지 오래고, 세종시에 분양받은 아파트는 2년 뒤에야 입주다. 이 지독한 일벌레들도 요즘은 "나부끼는 마음을 잡아둘 수가 없노라" 고백한다. 사실상 정책 공백기, 개점 휴업 상태다.

그 사이 상념에 빠진 이들은 짬날 때마다 과천 뒷동산을 거닌다. 누군가는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입고 첫 출근했던 수습 사무관 시절"을, 누군가는 "호랑이 과장을 만나 밤새 보고서를 고쳐썼던 기억"을 추억하면서.
성장률·물가·금융위기…. 경제 현안을 끌어안고 사는 최상목 경제정책국장도 오랜만에 '인간적인 일'에 마음을 쏟고 있다. "올해처럼 과천 청사의 단풍이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나 싶어요…." 최 국장은 그래프에, 통계에 고정된 시선을 과천청사에서 보내는 마지막 가을 하늘로 돌렸다.

이 와중에도 일부는 치밀하게 물밑작업 중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와 가까워지려 눈치를 보고 있다. 첫 관문은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꾸릴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들은 과천의 마지막 가을을 두고 상념에 빠지는 대신 다음 정부에서 맡을 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마지막 인사의 방식은 백인백색. 하지만 최대공약수는 하나다. 굿바이 과천시대.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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