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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빚진 자는 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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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대학을 다니느라 학자금을 빌렸다. 사회에 진출해 학자금 대출을 간신히 해결하자마자 주택 융자를 받는다. 수십개월 할부로 자동차를 장만한다. 생활비를 감당하려고 카드를 긁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다. 우리의 인생은 저당잡힌 인생이다. 삶의 목표는 이미 설정돼있다. 빚이 언제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부채 상환을 향해 허덕이며 달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빚덩이들은 내 탐욕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일까? 결자해지의 자세로 '과오'를 인정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한국사회의 만인이 채무자가 돼 버린 까닭은 구성원들의 허영과 근시안 때문일까.

'약탈적 금융사회'는 숨막히는 채무를 개인의 영역으로 전가하는 사회에 반역한다. 책은 "빚을 지고 연체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을 이제는 거두자. 못 갚는 것을 안 갚는 것으로 간주하는, 못 갚을 만큼 빌려 준 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지금의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포문을 연다.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학자금 푸어 등 각종 채무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 상황의 배경에는 욕망을 부추기고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유혹해 온 '약탈금융'이 있다. 이제 '약탈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시간이 왔다.
지금 한국 전체 가구 중 60%를 초과하는 가구가 빚을 안고 있으며, 이중 74%는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다. 빚은 또 빚을 낳는다. 원금상환은 엄두도 못 내고 이자만 납입하면서 생계를 위해 또 다시 대출을 받는 '생계형 대출'도 증가했다. 2012년 1분기 한국은행 잠정 집계 통계에 따르면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뺀 기타 대출 잔액, 즉 생계형 대출액은 471조에 이른다. 통계는 빚이 생존을 위협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은 '약탈적 대출'을 원인으로 먼저 지목한다. 채무자가 상환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 주고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금융업계 입장에서는 완전히 남는 장사다. 채무자가 돈이 있으면 대출이자와 원금을 받고, 갚지 못할 것 같으면 담보 물건을 경매에 넘기면 된다. 법적으로 39%의 이자가 허용되는 고금리 사채 업체들은 돈을 빌려 주지 못해 안달이다. 여기에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한국 사회의 불안심리가 겹친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재테크를 통해 자산을 확대해야 질병 등의 위기상황이나 노후에 대비할 수 있다는 공포심은 돈을 빌려서 무리하게 집을 사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빚만 늘려놓고 성과를 돌려주지는 못했다. 1990년 75.3%였던 중산층 비율은 2010년 67.5%로 크게 줄어든다.

IMF 직후 23.2%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축률을 유지하던 가계는 무너졌고 빚은 자식들 세대에게까지 대물림된다.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지금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집을 사고 팔면서 재산을 불려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주택 가격 상승분으로 대출을 상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임금 상승률은 답보 수준이다. 이미 몸에 배어 버린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빚을 낼 수 밖에 없다.
답은 있을까? 책은 '자기혁명'을 주문한다. 빚이 모두 내 탓이라는 생각과 채무자의 열등감을 버리고 외부에서 문제를 찾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대출 제한 금리를 낮추고 사채를 단속하는 한편 가장 위험한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서는 하우스푸어 주택매입 등의 정책적 방안이 논의된다.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대책 부문에서도 북유럽의 경기 회복 사례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절망적 사회를 확 들춰 보여주는 앞부분에 비해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 채무사회에 대한 고민을 확장하는 역할에는 충실하다.

약탈적 금융사회/제윤경 , 이현욱 지음/부키/1만 3800원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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