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목소리 녹음 없이도 작곡 가능 소프트웨어
신시사이저 모티브로 '버추얼 아이돌' 창조
요즘 버추얼 아이돌이 꽤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백화점에서 우연히 버추얼 아이돌인 '이세계아이돌'이 공연하는 것을 봤는데, 많은 팬이 모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는데요. 우리나라 원조 버추얼 아이돌 사이버가수 '아담'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버추얼 아이돌은 완벽한 것 같습니다. 아담은 다소 조잡하고 엉성해 결국 바이러스에 걸려 사망했다 등의 이야기로 서서히 잊혀갔죠. 혹시 아담을 기억하시는 분?
일본에는 원조 버추얼 아이돌이 아직 현역으로 건재하게 활동 중인데요. 바로 보컬로이드의 '하츠네 미쿠'입니다.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 이 단어는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라면 어디서 꼭 한번 들어보셨을 텐데요. 사실 '오타쿠'로 부르는 일본 문화 마니아들이 '미쿠 짱'으로 부르는 그 미쿠 맞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보컬로이드, 그리고 보컬로이드로 탄생한 원조 버추얼 아이돌 하츠네 미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녹음 없이 노래 만드는 프로그램, 보컬로이드
보컬로이드는 야마하에서 개발한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입니다. 2003년 등장했는데요. 누구나 음성을 합성해 음악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아이우에오', '카키쿠케코' 등 히라가나 소리마다 읽어서 분할해 등록하고 그것을 기계로 조합해 부르게 하는데요. 이 때문에 보컬을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보컬'과 '안드로이드'를 합해 '보컬로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네요. 초기에는 별로 화제가 되지 않다가 2세대 보컬로이드 소프트웨어가 발매되면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됩니다.
바로 2세대 보컬로이드를 엔진으로 하고, 여기에 홋카이도에 있는 미디어 회사 크립톤 퓨처 미디어라는 곳에서 음악 반주 데이터베이스를 세트로 노래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 우리가 아는 미쿠짱이 2007년 등장하게 되는데요.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깜찍한 캐릭터의 하츠네 미쿠는 보컬로이드 엔진을 통해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노래에 가상의 캐릭터를 덧씌워 만든 종합체가 하츠네 미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츠네 미쿠로 보컬로이드라는 소프트웨어 자체도 다시금 주목받게 되는데요. 사실 음악 창작자들에게는 혁명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작곡가가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면 쉽게 보컬을 입힌 노래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기존에 작곡하더라도 발매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르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불러달라고 부탁해서 녹음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매번 쉽지 않죠. 하지만 보컬로이드라면 PC로 쉽게 목소리를 덧입힐 수 있고, 수정도 간단하게 이뤄집니다. 심지어 인간이 낼 수 없는 빠르기, 고음도 낼 수 있죠.
여기에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스스로 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곳들이 대폭 늘어나게 됐습니다. 이에 레코드 회사를 거치지 않고 많은 노래가 발표되고, 히트곡도 차례차례 생겨나죠. 기존 음악의 유통 방식이 확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알린 크리에이터들을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로 부르는데, 줄여서 '보컬로이드 P'로 부릅니다. 이 보컬로이드 P 중엔 우리나라에도 이름을 알린 사람들이 꽤 많은데요. 노래 '레몬'으로 우리나라 노래방 인기차트 1위를 기록한 가수 요네즈 켄시, 애니매이션 '최애의 아이'로 이름을 알린 요아소비 등이 보컬로이드P 출신입니다. 아티스트의 등용문 역할을 하다니 신기하죠.
보컬로이드가 탄생시킨 버추얼 아이돌 1세대 '하츠네 미쿠'
그렇다면 하츠네 미쿠는 도대체 어떻게 유명해진 걸까요? 우리나라에서 한때 인터넷에서 흥행몰이했던 '파돌리기 송' 영상을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파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을 웬 농부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완벽히 재현했던 고전 영상인데요. 이 파돌리기 송에 나오는 캐릭터가 바로 하츠네 미쿠입니다.
보컬로이드로 만든 보컬의 경우 각자 녹음된 소리를 매끄럽게 하는 과정에서 원래 인간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색깔을 띠게 되는데요. 하츠네 미쿠를 처음 만든 크립톤 퓨처 미디어 소속 직원 사사키 와타루씨는 성우 사무소 3사에 소속돼있는 성우 CD를 전부 듣고, 그러다가 고음이 강한 젊은 성우 후지타 사키씨를 하츠네 미쿠의 바탕이 될 목소리로 낙점하게 됩니다.
하츠네 미쿠의 초록색 머리 등 외형은 야마하의 신시사이저 'DX7' 모델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요. DX7은 금속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고음의 전자음이 특징인 모델이었기 때문에, 미쿠의 어딘가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목소리의 고음과 야마하의 특징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해요. 특히 DX7은 검은 바탕에 초록색 스위치들을 배열한 것이 특징인데, 이 특유의 색깔이 'DX 그린'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죠. 하츠네 미쿠의 외형은 사실 이 신시사이저의 의인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츠네 미쿠는 2009년 콘서트도 열고, 이후로도 꾸준히 라이브 콘서트를 여는 등 여전히 팬을 자랑하는데요. 발매한 곡만 10만 곡이 넘는다고 해요. 대기업과 마케팅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하는 등 현재는 일본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등장하는 버추얼 아이돌의 원조 대선배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인간만 아이돌이 돼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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