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성한 이가 없제. 잇몸 교수님 집에 올때만 기다려라"

[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4-2) 오복의 하나, 찾아가는 '구강관리 서비스'
아픈 노인, 기력회력 위해 구강관리 필수
광주 북구 '통합돌봄' 서비스 시행 중

일본서는 보험제도 포함 '일상 서비스'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할머니, 아~ 해보세요. 이제 잇몸 마사지 시작할게요."

지난해 11월 12일, 광주 북구에 사는 배영임 할머니(75) 집에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과 교수가 찾아왔다. 김 교수는 배 할머니를 거실에 눕히고 입 근육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여든살인 배 할머니에게 남은 치아는 아랫니 두 개뿐이다. 틀니를 껴도 음식을 씹는 게 수월하지 않다. 배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 보행기를 끌고 길을 나섰다가 내리막에서 넘어져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한 이후 음식 삼키는 게 더 힘들어졌다.


"할머니, 이제 껌 운동해 볼까요? 제 입을 보고 따라 하세요. 껌을 탁구공처럼 만드셔야 해요." 할머니가 입 안에서 껌을 굴리는 걸 지켜보는 사람은 김 교수뿐만이 아니다. 이 집에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는 배 할머니의 동생 셋이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아픈 노인, 밥 잘 먹으려면 구강관리 필수

배 할머니는 ‘방문구강 건강관리’ 대상자다. 구강관리는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주 북구의 ‘통합돌봄’ 서비스 중 하나다. 총 12번 관리를 받을 수 있는데, 이날이 김 교수가 집에 오는 마지막 날이었다. 배 할머니 동생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운 다음, 앞으로 할머니에게 직접 해줄 작정이었다.


한국에서는 잇몸마사지라는 게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개호(요양)보험 제도에 있는 일상적인 노인 서비스다. 김 교수는 "몸이 회복되더라도 음식을 못 씹으면 잘 못 먹게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이 나빠진다"며 "근육이 뭉치면 풀어주는 것처럼, 잇몸 근육을 만져서 잘 드실 수 있도록 하고, 침샘을 자극해서 소화를 돕는다"고 설명했다. 배 할머니가 한참 동안 입을 오물오물 움직였다. 그리고 주름 팬 입술 사이로 동그란 껌을 내밀었다. 옆에 있던 여동생이 손뼉을 쳤다. "언니 너무 잘했당께! 밥을 잘 먹어야 계속 같이 살제!"


원본보기 아이콘

배 할머니는 보통 사람들보다 여리고 왜소하다. 키는 150cm가 채 안 되고, 몸무게도 30kg가 겨우 넘는다. 할머니에게는 영양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육촌동생 배성범씨가 배 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누나가 아픈지 벌써 십 년이 다 돼가네. 뇌경색 딱 앓고는 픽 쓰러져서 한쪽 몸이 마비가 돼버렸어라. 그 후로는 걷는 게 영 불편해서 자주 넘어지고 다치고. 누나가 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받았는디 내가 요양보호사라 직접 간병을 하고 있거든. 이 집에 오려면 오토바이로 삼십 분은 꼬박 걸리는디 중간에 시장 들러서 고기랑 나물도 자주 사 와. 그란데 누나가 이가 없어서 씹지를 못하니 밥을 잘 못 묵더라고. 그런데 입 운동을 꾸준히 시키니까 훨씬 좋아졌어라. 이제는 반찬만 가위로 잘게 썰어주면 밥 한 공기씩 뚝딱 해치운당께."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밥을 잘 먹어야 집에서 오래 살지"

젊었을 적 배 할머니는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농사를 지었다. 남편은 병들어 먼저 세상을 떴고 아들 둘과 살았다. 그러다 첫째 아들이 물에 빠져 하늘로 떠났고, 둘째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의 사망보험금이 나왔지만 다른 친척들의 손에 넘어갔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배 할머니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여동생 배영순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자식들 보내고 나서 언니가 아프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사는 아파트에 집을 하나 얻어서 데리고 왔어. 옆에 살면 보살필 수 있고 의지도 되니까."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은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배영임 할머니가 김은미 광주보건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에게 방문 구강 건강 관리를 받은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이제는 아침, 점심, 오후 시간을 정해놓고 동생 셋이 번갈아 배 할머니 곁을 지킨다. 거실 구석에 있던 사촌동생 배종철씨가 슬그머니 누나 곁을 파고들었다. 종철씨는 어렸을 때 머리를 다쳐 몸이 불편하지만 하루에 한 번 누나의 산책을 돕는다. "누나, 밥을 잘 먹어야 해" "…." 귀가 어두운 배 할머니가 말없이 종철씨를 바라봤다. 종철씨가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밥. 을. 잘. 먹. 어.야. 한. 다.고." 배 할머니가 그제서야 대답했다. "그라지. 그래야 너희 보면서 이 집에서 오래 살재."


원본보기 아이콘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