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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의사양반, 돈 낼 테니 집에 또 오면 좋것는디"


[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4-1) 누구보다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
온종일 홀로 집을 지키는 노인들
요양보호사 이외에 찾는 이도 없어

광주 북구 '통합돌봄' 시범운영
지난해부터 방문 의료진이 진료
방문 진료만으로 몸과 마음이 안정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주공아파트에서 거주하며 방문진료를 받고 있는 안영일 할아버지가 침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주공아파트에서 거주하며 방문진료를 받고 있는 안영일 할아버지가 침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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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다공증에 움직이지도 못해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안영일(89)씨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주방 옆 식탁에서 보낸다. 평생 배우자였던 아내는 치매를 20년 동안 앓다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요양병원에 잠깐 입원했던 때를 제외하고 그가 혼자 병간호를 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수발을 들었으니 안씨 몸도 성할 리 없었다.


그는 어느날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허리뼈가 툭 부서졌다. 골다공증이 원인이라고 했다. 지금은 척추측만증 탓에 허리를 아예 못 쓴다.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어야 몇 걸음 뗄 수 있다. 식탁은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려고 늘 앉아있는 곳이다. 손을 뻗으면 닿는 김치냉장고에서 반찬 몇 개를 꺼내 끼니를 때운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식탁에 올려놨다.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주공아파트에서 안영일(89)씨가 장기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에 나선 김종우 맑은숨우리내과 원장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주공아파트에서 안영일(89)씨가 장기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에 나선 김종우 맑은숨우리내과 원장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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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이 없어"

"내가 16층에 살고 있응께 언제 땅을 밟아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 가만있어도 허리가 아려분 게, 오른쪽 엉덩이랑 왼쪽 엉덩이를 번갈아 가면서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이여. 밖에 나가는 건 생각도 못허지."


경기도에 사는 아들은 명절에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면 그만이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보호사가 주5일 오지만 하루 두 시간 집안일을 돕는 게 전부다. 누구도 안씨를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작년부터 의료진이 그의 집에 찾아와 진료를 봐주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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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는 노인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자기 집에서 의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통합돌봄’ 시범지역이다. 방문의료 서비스는 작년부터 시작했다. 북구 안에만 안씨 같은 방문의료 대상자가 300명에 달한다. 간호사는 매주, 의사는 격주로 그의 집을 찾는다.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1시가 되자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좀 어떠셨어요." 젊은 의사와 간호사가 식탁에 진료 가방을 펼치고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가운에 ‘맑은숨 우리내과 원장 김종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허리 진통은 어떤지, 진통제와 파스는 남아 있는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를 묻고 당뇨검사도 했다. "오늘은 코로나 주사도 한 대 맞으셔야죠. 따끔해요."


김종우 맑은숨우리내과 원장이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안영일 할아버지의 방문진료를 마친 후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김종우 맑은숨우리내과 원장이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안영일 할아버지의 방문진료를 마친 후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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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마치자 김 원장은 안씨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아파트 앞에 있던 오래된 슈퍼마켓 아시죠? 그 자리에 새로 편의점이 들어섰는데 말이죠…" 동네 이야기를 꺼내자 할아버지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김 원장은 "아픈 상태에서 집에 혼자 계신 어르신들은 우울증이 올 수 있어서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선상님 가불고 나면 또 아픈거 같당께"

안씨는 김 원장이 집에 머무는 20분이 짧게만 느껴진다. "선상님 가불고 나믄 또 아픈 거 같당께. 내가 돈은 더 줄 낼테니께, 우리 집에 한 번만 더 와주믄 안 될랑가?" 현관문을 나서는 김 원장의 뒤통수에 대고 그는 매번 이렇게 하소연을 한다. "정말 안 될랑가?" 이 말에 김 원장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주공아파트에서 안영일(89)씨가 장기요양 재택 의료를 받은 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침실로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주공아파트에서 안영일(89)씨가 장기요양 재택 의료를 받은 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침실로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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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 방문의료를 한 번씩 받을 때마다 내야 하는 돈은 3만9000원 정도다. 1회 진료비가 약 13만원인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안 할아버지는 30%를 부담한다. "내가 예전에 해운국에서 공무원 생활 혔당께. 여수, 목포, 제주도 안 돌아댕긴 데가 없제. 지금도 공무원연금 받아가꼬 진료비도 내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어. 근디 제일 문제는 사람이여. 사람이 그리워불제."


거실에는 할머니와 같이 쓰던 물건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래된 가계부, 낡은 유선전화기, 텅 빈 화분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쌓아놓았다. 집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는 할머니 영정 사진을 뒀다. 성당에서 받아온 묵주와 그가 직접 그린 성화로 장식해놨다.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안영일 할아버지가 장기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의료진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안영일 할아버지가 장기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의료진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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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많아서 이 집을 못 떠나겄어. 요양원에는 짐을 다 못 가져가잖아. 애들 엄마 생각이 날 땐 안방에서 붓을 잡아본당께. 이래 봬도 내가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거든. 성당에서 전시회 할 정도는 된다고. 해 질 무렵엔 창밖을 잠깐 내다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걸 구경하면 참말로 좋재. 혼자라도 괜찮아. 의사선상님이 집으로 와주셔서 아파도 걱정 없당께. 나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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