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로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우리 더 힘을 내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1일 한남동 관저 인근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같이 독려하자 보수 정치 성향을 가진 유튜버들은 분주해졌다.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며 탄핵 반대 목소리를 더 높였고, 체포영장의 불법적 집행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을 복사하다시피 전하며 구독자수를 급속도로 늘려갔다. 한남동에 모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반대 집회 주도 개인 유튜버들이 어떻게 지지자들을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회 현장으로 나갔다.
유튜브에서 집회로, 집회에서 다시 유튜브로
“탄핵 무효! 부정선거 수사하라!”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했던 지난 14일 한남동 집회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한 남성이 외쳤다. 뒤에 놓인 전광판에선 유튜버가 진행하는 채널 영상이 흘러나왔다. 앉아있는 사람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며 구호를 따라 했다. ‘반국가세력’ ‘멸공’ ‘각하’ 등의 단어가 들렸다. 집회를 주도한 건 주로 유튜버들이었다. 단상에 올라 스피커로서 목소리를 냈고, 그 모습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생중계했다.
분위기는 점점 격앙됐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거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탄핵 표결에 찬성한 의원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배신자들’이란 노래를 불렀다. 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김준임씨(71)는 “집회에서 부르려고 유튜브를 보고 노래를 배워왔다”고 했다. 집회에 나오게 된 배경을 묻자 김씨는 “윤 대통령이 끝까지 싸우겠다며 지지자들을 독려한 말에 화답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60~80대 고령층이었다. 누군가의 후원금으로 마련된 방한용품과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장길자씨(66)는 “집에서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인데, 집회에 나와 목소리 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길바닥에 앉아 컵라면을 먹거나 피켓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면서도 유튜브 영상을 튼 휴대전화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시계방향)한남동 집회 현장에서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모습, 탄핵 찬성 집회에 모인 유튜버들, 야당 대표를 비난하는 유튜버의 모습. 이이슬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집회 현장에 동원된 대형 난방 버스에 앉아 몸을 녹이던 지지자들도 휴대전화로 유튜브나 뉴스를 봤다. 버스에서 만난 오한수씨(72)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빼곡하게 짠 유튜브 영상 스트리밍 일정표를 보여주며 “특정 채널의 진행자가 박사, 변호사라 정치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많으니 꼭 보라”고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냐고 묻자 “부정선거는 사실”이라며 한참 동안 관련 주장을 펼쳤다. “뭐라도 힘이 되고 싶어서 매일 유튜브를 보고 있다”고 말하는 오씨는 아이돌 가수 팬 활동에 빠진 골수팬을 연상시켰다.
집회에서 만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유튜버들이 ‘진실’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유튜버 배후에는 윤 대통령이 있고, 그들끼리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일부 지지자는 “뉴스는 날조된 가짜 선동이니 보면 안된다”며 북한을 언급하는 극단적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정치적 입김 과시하는 유튜버들
정치색이 짙은 유튜버들일수록 집회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이 셌다. ‘신 남성연대’는 지난 8일 집회에서 국민의힘 지역 의원들을 언급하며 관저 앞으로 모이라고 요구했다. 이름을 언급하며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빨리 와라. 이는 부탁 아닌 협박"이라고 했다. 이는 유튜브 채널 실시간 방송을 통해 중계됐고, 이후 국민의힘 전국 시도당 전·현직 청년위원장이 현장에 등장했다. 이들은 유튜버들과 인터뷰를 한 후 무대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유튜버들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움직일 줄 아는 우리가 돼야지.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이용해야지"라고 말했다.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발부한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 대통령 체포를 촉구하는 단체와 체포 반대를 촉구하는 단체가 경찰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전광훈씨는 집회에서 탄핵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윤상현 의원은 집회에 참석해 “잘하면 대통령 되겠다”는 전씨 말에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 후 큰절까지 올렸다. 이는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광훈TV'로도 실시간 중계됐다. 유튜버들은 집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을 쉽게 언급했는데, 이후 의원들이 실제 집회에 참석하며 입김을 자랑했다.
유튜브 채널 순위집계 플랫폼 '플레이보드'를 보면 보수 성향이 짙은 정치 유튜브 '홍철기TV'와 '젊은시각' 등은 한남동 관저 앞 상황을 실시한 중계한 방송으로 각각 200~4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신의한수'는 계엄 사태 이후인 지난달 5일부터 이달 2일까지 거둔 후원금(슈퍼챗)이 1억3000만원을 넘는다. 구독자는 계엄 사태 전(151만명) 보다 7만명 이상 늘어 158만여명을 기록 중이다. 주요 보수 유튜브 채널 대부분의 구독자수는 1월 현재 계엄 이전인 지난해 11월보다 수만명 늘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유튜브 채널 중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 당일 '고양이뉴스'와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 각각 수천만원의 슈퍼챗을 받으며 후원금 순위 1,2위를 기록했다.
검증 없이 전파되는 주장들
정치 편향적 영상을 찍는 유튜버들은 보수, 진보 정치 성향을 가진 지지자들로부터 사실상 언론사나 다름없는 지위를 누리고 있었지만, 전파하는 주장을 검증하는 절차는 대부분 생략했다.
유튜브에서 집회로, 집회에서 다시 유튜브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확산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사실 검증과 반론 청취 등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보도한다. 반면 1인 미디어 플랫폼인 유튜브는 누구나 영상을 만들고 실시간으로 방송을 내보낼 수 있어 원칙 없이 주장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다.
집회에서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유튜버들은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지지율 상승에 계엄을 잘했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곧 지지율이 50%를 넘을 것”이라며 10~20대 젊은층 지지자가 더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해당 지지율을 집계한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의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의 '지지'를 전제로 질문하는 등 모범적 설문 방식을 차용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객관적으로 밝힌 유튜버는 현장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