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다음은 파키스탄?
코로나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發 연쇄 디폴트 우려
IMF, 저소득 국가 중 56% 부채 부실화 됐다고 판단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여파로 개발도상국 및 신흥국의 도미노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스리랑카에 이어 연쇄적 디폴트 선언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경제의 회복력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건전성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신흥국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신흥국이 지난 10년여 간 저금리·저물가 환경에서 부채를 쌓아온 데다가 코로나19로 정부 지출을 늘린 상황에서 전쟁발(發) 인플레이션까지 맞닥뜨리게 됐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 기초체력과 산업기반이 약한 신흥국들의 경우 위기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역량이 부족해 스리랑카와 같이 디폴트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저널은 전망했다.
◆IMF "저소득국 상당수 부실위험 높아"= 코로나19를 거치는 과정에서 급격히 증가한 대외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제일라 파자르바시오글루 전략정책심사국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의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 정부·기업·가계 부채 총액의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28%포인트 상승해 256%에 달했는데, 이는 1·2차대전 이후 본 적이 없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국제 채무상환 유예 프로그램 대상국으로 지정된 저소득 국가 73개국 중 약 56%인 41개국은 이미 부채가 부실화됐거나 부실 위험성이 높은 상태라고 IMF는 진단했다. 이는 2015년 27%에서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IMF는 최근 세계은행(WB)과 이 같은 개도국 및 신흥국의 부채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실제 스리랑카는 지난 12일 "IMF와의 (구제금융 지원) 협상이 마무리되고 포괄적인 채무 재조정이 준비될 때까지 대외부채 상환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스리랑카의 대외 부채는 약 510억달러(약 62조7912억원)에 이르지만, 외화보유고는 3월 말 현재 19억3000만달러에 그친다.
눈에 띄는 것은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 특히 대중국 부채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IMF에 따르면 73개 저소득국의 대외 부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2%에서 2020년 18%로 급증했다. 민간 부문 대출의 경우 3%에서 11%로 늘었다. 반면 IMF나 WB와 같은 다자간 기관 등 전통적 대출기관에 대한 부채는 83%에서 58%로 급감했다.
저널은 "곤경에 처한 채무국을 돕기 위한 노력은 최근 몇 년 동안 개발도상국 대출에 경험이 부족한 새로운 채권자(중국)가 진입하면서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제금융협회의 소냐 기브스 선임디렉터는 "현재 부채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두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 모으기 위한 조정방안을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파키스탄, IMF 지원계획 중단돼
이집트, 관광수입 못 올려 타격…자국통화 14% 평가절하
튀니지선 설탕·밀가루 등 기본식품 공급도 끊겨
◆도미노 디폴트 우려…"다음은 어디?"= 현재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은 국가로는 파키스탄이 꼽힌다. 파키스탄은 축출된 임란 칸 총리가 지난 2월 말 일방적으로 15억달러 규모의 연료와 전력보조금 지급 계획을 밝히면서 IMF의 지원계획이 중단된 상태다. 3월 파키스탄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12.7%나 뛰었다.
이집트도 코로나19로 관광 수입이 끊기며 팬데믹의 타격을 입었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외국인 투자금 이탈을 겪고 있다. 이집트 중앙은행은 IMF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국 통화를 14% 평가절하했다.
지난 2016년 이후 IMF로부터 200억달러 가량을 차입한 이집트는 2020년과 2021년 정부 세입 가운데 4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썼으며, 올해도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페르시아만(걸프) 연안 국가들과 유럽연합(EU)로부터 220억 달러 이상의 지원을 약속받은 데 이어 추가적으로 IMF에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내다봤다.
튀니지의 경우 설탕, 밀가루 등 기본 식료품 공급이 끊겼고 얼마전부터는 공무원 임금 지급도 연기했다. 정부는 지난달 WB로부터 4억달러의 금융지원을 받았으며, IMF의 지원도 원하고 있다.
◆경제규모 작지만 확산시 글로벌 건전성 우려= 디폴트 우려를 키우는 대부분의 저소득국가는 경제규모가 크지 않아 당장 세계 경제에 미칠 타격은 미미할 수 있다. 스리랑카만 하더라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세계 69위)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과의 교역만을 살펴보면 스리랑카와의 교역량은 연간 4억3000만달러 수준으로, 전체 교역 규모와 비교하면 0.03%에 그친다. 스리랑카 현지에 진출한 금융기업도 수출입은행(콜롬보 사무소) 외엔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빅스텝 및 워세션(war-cession) 등이 현실화할 경우 펀더멘털이 취약한 이들 국가의 연쇄 디폴트는 ‘우려’가 아닌 ‘실제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스리랑카 뿐 아니라 중남미 엘살바도르, 모잠비크, 튀니지, 가봉, 에티오피아, 앙골라 등이 1년 이내에 디폴트에 직면할 수 있다고 관측한 바 있다. 엘살바도르와 모잠비크의 경우 그 가능성을 백분율로 따지면 50%를 웃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로베르토 시폰 아레발로 분석가는 "거의 모든 국가들이 2008년보다 많은 부채를 갖고 있다"면서 "아직 위기가 임박한 상태 같지 않아 보이지만, 일부 국가들은 실제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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