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둑 기사 꿈꿨던 삼성증권 신천점 차진혁 주임

5년간 한국기원 연구생, 검정고시 거쳐 대학 입학
올 1분기 전국 삼성증권 주식부문 매출액 1위, 사내방송 출연으로 유명세


차진혁 삼성증권 주임(사진 앞쪽)이 인터뷰 중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차진혁 삼성증권 주임(사진 앞쪽)이 인터뷰 중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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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하루 15시간 씩 바둑판을 들여다보던 소년이 있었다.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며 바둑도장에서 2년,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5년을 보냈던 소년은 지금 양복을 입은 직장인이 됐다. 미생의 ‘장그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얘기의 주인공은 삼성증권 신천점 차진혁(29) 주임이다.

첫 입사 땐 그도 웹툰 속 장그래처럼 고군분투했다.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모의투자 대회에서 전국 꼴지를 했다. 신입사원 교육이 끝난 뒤 실시되는 심사평가에서도 최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차 주임은 올 1분기 전국의 삼성증권 주임 256명 중 주식부문 매출액 1위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로 따졌을 땐 전국 2등이다. 그는 사내방송에 2번이나 출연했을 정도로 삼성그룹 내 유명인사다.


<질문>미생의 장그래와 굉장히 비슷하다.
<답변>나도 미생을 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바둑 두는 사람의 심리를 굉장히 잘 표현했더라. 실제로 윤태호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윤 작가가 답장을 해 왔다. 내 얘기가 재미있다고 했다.

<질문>윤태호 작가가 왜 바둑을 소재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답변>바둑을 뒀던 사람들은 정말 절박하다. 우리 때는 100명 중 2명 정도만 프로가 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바둑을 한다고 하면 ‘인내심이 좋겠다’ ‘수학을 잘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바둑 두는 사람들의 큰 특징은 ‘독하다’는 것이다. 연구생 시절에는 하루 15시간 씩 수련한다. 미생을 보면 장그래는 정말 절박하지 않나. 인턴 출신 계약직 직원인데 그 절박함을 표현하는데 바둑이 적합했다고 본다.


<질문>바둑과 증권이 관계가 있나.
<답변>영업을 할 때, 바둑격언 ‘위기십결(圍棋十訣)’이 와 닿을 때가 많다. 그 중 ‘세고취화(勢孤取和)’, 즉 ‘상대방이 강한 곳에서는 싸우려들지 마라, 내가 고독해야 평화를 취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장(場)에 자신이 없거나 실제 약세장이라면, 굳이 거기서 싸우려 하지 않아도 된다. 바둑 두다보면 불리한 순간을 참고, 싸워 이기는 걸 감각적으로 훈련받는다.


차 주임의 독특한 이력은 미생 장그래를 닮은 유년기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한 그는 18살 때 바둑을 그만두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또, 연영과 전공자로는 보기 드문 ROTC 출신이다. 삼성증권에 입사해서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동료 2명과 함께 바둑팀을 꾸렸다. 지난해 직장인 바둑대회에 출전해 8강까지 갔다. 그의 바둑실력은 아마 5단이다.


<질문>왜 연영과에 갔나.
<답변>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CF감독이고, 어머니는 현역 캐스팅 디렉터이자 전직 연극배우다. 어릴 적부터 많은 영향을 받다 보니 연영과에 가고 싶었다.


<질문>전공을 살리지 않은 이유가 있나.
<답변>연영과를 수석 입학해서 차석으로 졸업했고, 장학금도 매 학기 받았다. 시나리오 작가 견습생 생활도 했고, 영화 평론도 써 봤다. ‘콘텐츠 두 시간짜리를 만들어서 1만 명이 그걸 보면, 누군가가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2만 시간 아닌가‘, 이렇게 낭만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업계에서 잘나가는 선배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나 스스로 행복한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언제 행복을 느끼는 지 고민했다. 요즘엔 자기 자산이 느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더라. 그래서 증권사에 취업을 하기로 했다. ROTC를 한 건 검정고시로 학교를 졸업해 리더십이나 사회성이 부족할 것 같다는 인상을 깨고 싶어서였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은행과 보험, 증권을 자주 구분지어 표현했다. 은행이나 보험은 이미 존재하는 상품을 파는 것이지만, 증권은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상품을 연구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업해서 누군가의 자산을 불려주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질문>증권사를 선택한 이유는.
<답변>증권은 승부의 세계다. 일대일로 바둑을 겨뤘던 사람들은 쉽게 지지 않는다. 주식은 기세와 감각이 중요하다. 일을 하다보면 감각이 서늘할 때가 있다. 바둑은 두다 보면 돌을 놓는 순간 느낌이 온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짝만 봐도 안다. 내가 손을 떼는 순간 상대방이 돌을 들면 그건 진거다. 주식도 그럴 때가 있다. 수급표 움직이는 것과 호가가 들어가는 체결창 보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질문>자신만의 영업 전략이 있나.
<답변>일종의 영업비밀인데. 나는 항상 스토리를 만들어 판다. 일반적으로 PB(프라이빗뱅커)들은 “ROE(자기자본이익률) 몇 %다, BPS(주당순자산가치)가 얼마다”는 식으로 수치를 언급한다. 나는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하고, 스토리를 만든다. 일본의 노령화와 제네릭 약품을 연결시킨다든지 해서 실생활에 잘 와닿게 얘기를 해 준다. 고객들이 한 종목을 사더라도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증권사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돈을 벌려고 오겠지만, 나와 대화하는 것도 즐거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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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에 차 주임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아냐”고 물었다. 그는 “고객이 내게 돈을 맡겨 그 덕에 삼성증권에서 월급 받는 나는 프로여야 한다”고 했다. 프로 바둑기사는 돈 받고 바둑을 두지만, 아마추어 기사는 참가비를 내야 하는 것처럼.


☞웹툰 미생=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던 한국기원 연구생 ‘장그래’가 바둑을 그만둔 뒤 무역상사에 계약직 직원으로 취업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웹툰. 계약직 신입사원이 겪는 어려움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끼'를 그린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다. 2012년 문화콘텐츠대상 수상식에서 ‘만화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다음’에서 연재 중이다.


조은임 기자 good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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