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없는 유럽, "가톨릭 교회에도 세금 물리자"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유로존 주요국이 부채위기에 시달리면서 말 그대로 ‘성역’ 이었던 유럽 가톨릭 교단까지 세금을 내야 할 판이라고 15일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위기 확산으로 유럽 주요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세입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에 각국 세무당국은 지금까지 면세 혜택을 받아 왔던 성당과 수도원까지 과세 대상에 올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당들도 경제위기로 신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짐에 따라 헌금·기부금 수입이 줄어드는 등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몇몇 유럽 세무당국은 지금까지 음지에서 관리됐던 교단의 금융거래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부채위기를 정면으로 맞은 나라들이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아일랜드 등 역사적으로 가톨릭 구(舊)교가 강한 남유럽 국가들이라 압박이 더욱 크다.
스페인 알칼라 등 몇몇 도시에서는 시 의회를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가 보유한 비(非)종교적 목적의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실현될 경우 교단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교단은 가장 큰 부동산 소유자다. 학교·가옥·공원·스포츠시설·식당까지 다양한 자산이 스페인 가톨릭 교단의 소유이며 매년 30억유로의 면세 혜택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에서도 마리오 몬티 총리 내각이 교회의 상업적 자산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상당수 초등학교가 교회 재단 소속인 아일랜드에서는 이를 교회가 소유하지 못하도록 교육부가 직접 나섰고, 영국에서는 주요 도시마다 미션스쿨의 교통비 보조금 지원을 폐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가톨릭 교단은 정부가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었다. 바티칸과 가톨릭 교단의 총 보유 자산가치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추산 자체가 힘들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헌금 수입 감소 외에 자산가치 자체가 감소하고,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사제들의 각종 추문들로 막대한 금액이 지출되고 있다. 바티칸의 경우 올해에만 1900만달러 규모의 재정적자를 낼 전망이다. 여기에 바티칸의 은행 자금이 이탈리아 마피아들의 돈세탁과 연관됐다는 의혹까지 겹치면서 더욱 곤란해졌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최근 “가톨릭 교단의 사회적 기능을 감안할 때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세 주장은 무책임하다”며 교단을 옹호했지만 이같은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이미 스페인 내에만 최소 100개 중소 지방자치단체가 교회에 지방세 부과를 입법화했다.
과거 가톨릭 교회는 각국 봉건왕조들과 세금을 둘러싸고 충돌을 거듭했다. 왕정이 교회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곧 교황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 절대왕권이 수립되고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쇠퇴를 맞이했다. 얄궂게도 21세기 유럽에서 이같은 역사가 다시 재연되고 있다. 남유럽 가톨릭 국가를 압박하는 진영이 다름아닌 독일로 대표되는 ‘신교’ 국가들이란 점도 역사의 ‘우연’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