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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장관의 설익은 발언과 시장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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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부자를 때려잡으면 가난한 사람이 죽어. 있는 사람이 돈을 안쓰면 있는 사람이 죽는 게 아니라 없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얘기야. 지금이 딱 그짝이고…."

지난주 '2ㆍ26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방안' 100일을 맞아 시장 동향을 취재하던 중 강남구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가 건넨 얘기다. 전ㆍ월세 임대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골자로 한 2ㆍ26대책으로 급격히 냉각된 시장 때문에 휴업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시장 상황이 잘못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었다. 그는 시장 자율에 맡기지 않고 정부정책으로 시장을 움직이려고 하더니 결국 또 정책이 시장을 망쳐놨다고 한숨지었다.
이런 분위기는 강남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 2ㆍ26 대책 발표 직후부터 여론은 차가웠다. 지나친 전세 쏠림 현상을 매매수요로 전환해 부동산시장을 살리겠다는 정부 의도와는 달리 시장위축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는 현실로 나타났다. 연초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던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주택 거래증가세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상승하던 집값도 고꾸라졌다.

결국 100일만인 지난 5일, 주택정책 수장인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지 않던 세금을 내야 하는 부담으로 주택시장에 관망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임대소득 과세 방침이 시장을 냉각시키고 있음을 시인했다. 정부정책이 살아나던 불씨를 꺼트렸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보유주택 수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것이 적절한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말로 정책 수정도 시사했다.

이튿날 국토부는 장관의 원론적 설명일 뿐 확정된 내용은 없다는 해명자료를 배포했지만 이미 시장은 정책수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2주택자의 전ㆍ월세 임대소득에도 세금을 물리기로 했던 방침이 '없었던 일'로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눈치보기 장세가 더욱 짙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줄곧 부동산경기를 정상화하려는 제스쳐를 보이다 2월 과세정책으로 회복되던 경기에 찬물을 끼얹더니 또다시 과세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나선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을 수도 없어 보인다.

물론 시장의 움직임은 임대소득 과세 때문만이 아닌 추세적 하락의 결과라는 상반된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문제는 정책이 수시로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일관성과 지속성을 상실해 반짝 효과에 그치는 시장의 단기변수로만 작용하게 될 수 있어서다.

정부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와 검토도 이뤄지지 않은 얘기들이 산발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점도 문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장관 발언이 원론적 수준이라는 정부의 해명은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작 과세정책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협의된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고려의 정령(政令)이 사흘만에 바뀐다는 뜻의 '고려 공사 사흘'이란 말이 있다. 일관성 없는 오락가락 정책은 시장의 혼란을 낳고 불신을 증폭시킬 뿐이다. 정부는 허둥지둥 설익은 얘기를 꺼낼 게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대책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정책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신뢰받지 못한 정책의 피해는 결국 국민 몫이기 때문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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