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재명 대통령의 불호령대로 야간 초과 근무를 없애 노동강도를 낮추면 모든 게 해결될까. 반복되는 SPC그룹 공장의 끼임 사망 사고 핵심은 관리되지 못한 기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위험 감지 시 기계를 멈출 수 없었다는 것에 있다. 아시아경제는 3건의 사망 사고 과정과 기계를 재구성하고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을 톺아봤다
SPC 현장 노동자의 일기장 보니
기계 중단은 곧 생산목표 달성 실패라는 압박 베테랑들도 감히 기계 멈출 엄두도 못 내 당장 2교대 근무 폐지하더라도 사고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첫 근무를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유니폼을 지급받고, 안전교육과 보건교육을 받았다. 안전교육 때 생산공장에서 산업재해 비율이 월등이 높다는 내용이 나왔다. 교육 담당자는 "종사자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보건교육은 담당자가 없어 영상으로 대체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보건교육 담당자는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 처리 때문에 교육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점심을 먹고 업무에 바로 배치됐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작업장에 들어갔다. 기계에서 나온 반죽을 철판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어떠한 사전 설명 없이 사수의 불친절한 지시와 신경질적인 타박에 정신없이 따라 했다.
2024년 9월 30일
모자색으로 신분이 나뉜다. 입사 6개월 미만 신입은 노란색, 정규직은 흰색, 반장은 초록색, 라인장은 파란색, 품질팀은 자주색으로 구분된다.정규직끼리는 서로 업무에 관여하지 않지만, 노란 모자에게는 사정없이 질책을 한다.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선 노란 모자의 행동이 답답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작업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일이 꼬이는 상황이 찾아오면 모든 화를 노란 모자에게 표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계약직인 노란 모자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그냥 참아낼 수밖에 없다.오늘도 그랬다. 동기 A 언니는 처음 해보는 작업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보고 고참이 상처되는 말을 쏟아내고 다른데로 가라고 했다. 첫인상에 일을 잘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실수해도 용인해 주지만, 처음 보인 모습이 미숙하면 '일 못하는 애'로 찍혀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혼이 난다.
2024년 10월 2일
오늘은 휴무다. 야간조에 들어가기 위한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야간조를 하고싶지 않았는데, 임산부 등 특수 상황이 아니면 모두 투입된다고 했다. 검진은 일사천리로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야간 근무를 위한 의사와의 상담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2024년 10월 10일
사수와 함께 버터롤 포장을 하게 되었다. 사수는 점심때까지 편하게 쉬면서 빵을 검수하는 작업을 하라고 했다. 마지막 빵까지 다 보내고 사수 쪽으로 가니 그곳에는 아직 다 포장하지 못한 빵과 재포장할 거리가 쌓여있었다. 편하게 쉬라던 사수는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어떻게 한 번을 안 와보냐 XX"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노란 모자인 내가 참아야지. 맞춰야지.
2024년 10월 13일
야간근무다. 정형반에 가서 청소를 도왔다. 야간에는 별로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몸이 아프다. 원래도 12시만 넘으면 발목에 피가 안 통하고 삭신이 쑤셨는데, 몸이 무겁고 정신이 맑지 않다.
2024년 10월 26일
반장이 조회 때 A 언니가 몸살로 인해 안 나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오늘 사람이 모자라 일이 힘들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오늘 모든 힘들었던 원인을 'A 언니가 결근해서'로 귀결시켰다. 아파서 못 나온 한 사람의 잘못인가? 그것도 신입에게. (나중에 A 언니에게 들은 말인데 다음 날 출근하니 반장이 불러 네가 결근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2024년 10월 28일
힘든 하루였다. 오늘 포장반의 업무는 대략 이러했다. 일단 내가 컨베이어 벨트 맨 앞에서 빵을 담는다. 다 담지 못하고 남은 빵들이 컨베이어 벨트로 내려가면 뒤에서 두 명이 이를 담는다. 내가 빨리하지 않으면 다른 두 명의 일이 많아지고, 담지 못한 빵들은 쌓이게 된다.압박감에 정신없이 하다보면 온몸이 긴장해 아프다. 특히 발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고참 말로는 노란모자 뗐을 때 발가락이 시커멓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왼손은 포장지를 하도 만져 포장지의 노란색이 손에 물들고, 잉크 냄새가 진동한다. 소보루에 긁혀 살이 까진다. 1년, 3년, 10년을 일한 사람도 일에 적응이 안 된다 했던 이유가 있다.
2024년 11월 8일
정형반에서 어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포장하다가 기계에 손을 다쳤다고 한다. 몇 바늘 꿰맸다고 하는 소리도 있고, 사실은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신제품 출시로 대표도 와있는 자리에서 긴장한 탓에 사고가 났다는 얘기가 있다.) 옆 라인의 사고조차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그 때문인지 옆 라인에 지원을 나가야 했다.나도 지원대상이지만 라인 고참이 날 빼줬다고 했다. 왜 그런지 여쭤보니 다치면 안 된다고 보호한다고 뺐다고 한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고참 이모들은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