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2216편은 전날 오전 9시3분께 랜딩기어(비행기 바퀴 등 이착륙에 필요한 장치)가 펼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안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공항 외벽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객 175명 전원과 조종사·객실 승무원 각 2명 등 17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생존자는 2명으로 기체 꼬리 부분에 있던 남녀 승무원이다.
착륙 허가 9분 만에…조류경고→비상착륙→충돌
'착륙허가→조류경고→비상착륙→충돌'까지 9분 동안 참극이 벌어졌다. 이날 국토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맡은 주종완 항공정책실장과 유경수 항공안전정책관 등에 따르면 무안공항 관제탑은 이날 8시54분에 사고기인 제주항공 7C2216편 착륙을 허가했다.
사고기는 1차로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던 중 8시57분께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활동(충돌) 경고'를 받았다. 이 경고는 대개 규모가 큰 새떼나 덩치가 큰 새가 항공기 근처에서 포착됐을 때 내려진다.
이후 사고 기장은 기체에 이상을 포착하고 약 2분 뒤인 8시59분께 '메이데이'를 선언했다.
오전 9시, 사고기는 원래 착륙하려던 활주로 방향(01활주로)의 반대쪽에서 진입하는 19활주로를 통해 착륙을 시도했다. 이어 3분 후인 9시3분에 랜딩기어(비행기 바퀴)가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선체와 활주로 간 마찰해 착륙하려다가 속도를 못 줄이고 사고를 당했다.
주 실장은 "관제탑에서 활주로 반대 방향으로 착륙 허가를 줬고, 조종사가 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착륙하는 과정에서 활주로를 지나서 외벽에 충돌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고기가 새와 충돌하면서 엔진에 이상이 생겼을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서 주 실장은 "통상적으로 엔진 이상이 랜딩기어 고장과 연동되는 경우는 없다"며 "랜딩기어가 고장 나도 착륙 시에는 자동으로 펴지거나,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조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살려내라" 가족 호명 때마다 통곡
30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는 제주항공의 7C2216편 여객기 잔해가 여전히 널브러져 있었다. 꼬리 부분만 남은 항공기 절단면을 통해 온갖 집기와 부품이 그을린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불길과 충격이 희생자들을 덮친 흔적은 다소 흐린 날씨에도 뚜렷했다.
항공기는 활주로 외벽에 들이받은 후 폭발하면서 꼬리 부분만 앙상히 남았다. 후미를 제외하면 항공기라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잿더미만 가득했다. 크레인이 들어 올린 항공기 내부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전남 무안소방서 직원들은 잔해를 들추며 희생자 수색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띄운 드론도 주위를 날아다니며 흔적을 찾았다. 이번 항공기 참사가 버드 스트라이크(엔진으로 새가 빨려 들어감)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지만 야속한 철새들은 참사 이후엔 목격하기가 어려웠다. 이날 오전 8시 전남권 일부에는 가시거리 1㎞ 미만의 짙은 안개가 끼었다.
공항 청사 대합실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로 가득했다. 희생자를 호명할 때마다 유가족들의 고개와 무릎이 꺾였다. "살려만 주세요, 살려내 주세요", "아니야, 이건 아니야" 등 유가족들의 통곡이 쏟아져나왔다.
연말과 크리스마스 휴일과 맞물린 시기라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고 한다. 최연소 탑승자는 2021년생 3세 남아였고, 최고령 탑승자는 80세였다. 20세 미만 탑승자도 15명가량으로 알려졌다. 최고령 탑승자는 자녀와 친인척 등 8명과 함께 팔순 잔치를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사고 수습 내용은 세종시와 서울 강서구 등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정작 현장의 유족들에게는 소식이 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현장에 나와 있는데 정확한 사고 조사 경위는 뉴스를 보고 알아야 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호소했다. 일부 격앙된 유족들은 정부 관계자에게 제대로 된 소통 창구도, 진전된 소식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임시 유가족 대표를 맡은 박한신 씨는 "남성분들만이라도 해가 지기 전에 사고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최대한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진철 부산지방항공청장은 "선례가 없을뿐더러 참상에 따른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김이배 대표 등 제주항공 경영진이 전날 오후 늦게 무안공항에 등장하자 반응은 더욱 격앙됐다. 김 대표와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고준 AK홀딩스 대표 등 제주항공과 모회사 애경그룹 경영진들은 29일 오후 8시께 무안공항에 나타나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추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씨는 이들을 향해 "전국이 서너시간이면 닿는 세상인데 11시간 만에 나타나서 뭐하자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승객 대부분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행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에서 유가족들이 탑승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38명 신원 미확인…블랙박스는 김포공항으로 이송
30일 오전 기준, 사망자 179명 가운데 141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블랙박스도 발견돼 김포공항으로 이송해 분석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대응 브리핑을 열고 "오전 9시30분 현재 141명의 신원 확인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신원 확인이 필요한 승객은 38명으로, 현재 유전자 분석과 지문 채취를 통해 절차를 밟는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사기관의 검시를 마쳐 시신 인도 준비가 끝났을 때 가족들에게 추가 연락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습한 유해는 무안공항 격납고 등에 임시로 안치했다. 유가족에게 인도할 때까지 보존을 위한 냉동설비도 마련하고 있다. 국토부는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현장을 당분간 보존하기로 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 규명의 열쇠인 블랙박스 두 개는 완전히 수거됐다. 사고기의 블랙박스는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자료기록장치(FDR)'로 구성돼있다. 사고 직후 CVR 외형은 100% 찾았지만 FDR은 외형이 일부 손상된 채 회수됐었다. 그러나 간밤에 떨어져 나간 FDR까지 발견되며 일단 사고기 블랙박스 외형은 온전히 확보했다.
곽영필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반 소속 과장은 "밤사이 손실됐던 블랙박스까지 다 확보해 김포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김포공항에 있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분석실에서 블랙박스를 해독하는 것인데, 데이터 다운로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원인 조사는 두 장치의 기록을 비교하면서 분석해야 한다. FDR과 CVR 해독 작업이 전체 조사의 방향성과 기간을 정한다. 두 장치가 완벽히 다 있고, 데이터를 내려받을 수만 있다면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블랙박스 훼손으로 데이터 다운로드가 쉽지 않다면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의 도움을 받아야 해 조사 기간이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주정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블랙박스가 어떤 상태인지와 사고에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지금은 분석이 언제 끝나는지 시기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