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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도시-홍대입구역. 최신 트렌드의 인기 레스토랑과 카페, 클럽 등이 자리잡고 있어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저녁이면 오가는 이들로 지하철 출구는 북새통을 이룬다.
홍대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 Copyright ⓒ 파릇한절믄이
그런데 전혀 다른 이유로 홍대입구를 찾는 이들이 있다.-애인과 함께 최근 뜬다는 '맛집'을 찾아온 것도, 클럽에서 '불금'을 보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뭔가 수상쩍은 이 사람들이 홍대에 온 이유는 바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홍대 가톨릭청년회관 건물 옥상
젊음이 생동하는 거리에서 시골 내음 나는 농사를 짓는다? - 이렇게 반문하는 이들도 홍대입구역 번화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가톨릭청년회관 건물 옥상에 올라가 보면 반응이 달라진다. 70평 남짓한 기다란 옥상은 거리와는 다른 생동감이 느껴진다.'홍대텃밭다리'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푸르디푸른 작물들 때문이다.
허브 화분
스피아민트, 레몬그라스, 상추, 치커리, 겨자 허브부터 쌈 채소까지-허브와 쌈 채소들이 곳곳에서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내뿜고 있다.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애호박과 콩 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눈길을 끌고 겨울 김장을 기다리는 배추가 한쪽에서 묵직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이렇게 도심 한가운데서 먹거리용 텃밭 공간을 만드는 이들을 '도시농부'라고 한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도시를 바꾸고 새로운 내일을 만들고 있다.

도시텃밭이 늘어나는 이유

고작 옥상에서 텃밭을 일구는 것만으로 어떻게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도시농부 1세대로 홍대텃밭다리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도시농업활동가
박정자씨(49 여)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건물의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를 비롯해 강변, 학교, 병원 등의 노는 땅에
작물을 심고 기르는 일이 도시에 무궁무진한 긍정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다.

작물의 푸른 생기는 도시환경을 개선할 뿐 아니라 차가운 도시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워 수확하는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감이 메마르고 팍팍한 도시생활의 대안이 되기도
한다. 텃밭 디자이너, 농부학교 강사 등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도시농업에 대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더위, 갑작스러운 홍수,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해소하는 생명 산업이며 인간관계 회복, 스트레스 감소,
자존감 향상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치유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홍대텃밭다리와 합정동 복합문화공간
'무대륙' 건물 옥상 '텃밭대륙'을 함께 일구는 이들은 50여 명에 달한다.

도시텃밭 이미지 Copyright ⓒ 파릇한절믄이
우리끼리는 도시농업이 미래성장 산업이라고 말해요. 텃밭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도시농업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도시농업 활동가 박정자씨

도시농부의 수와 도시텃밭 면적의 변화

도시농부의 수와 도시텃밭 면적의 변화 표

농사의 매력 도시농부들은 한 목소리로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고 말한다. 부모 세대에게 농사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고된 노동이었다. 그러나 도시농부들에게는 흙을 손에 묻히고 작물을 키워내는 노동이 업무에 지친 심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역할을 한다. 이들에게 도시텃밭은 농사(Agriculture 애그리컬처)와 놀이(entertainment 엔터테인먼트)를 합친 '애그리테인먼트(Agritainment)'다. 도시농부로 살아가는 이들은 텃밭에서 작물 이상의 특별한 '무엇'을 수확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도시농부들은 "그냥 사서 먹지"라는 무관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힘들여 키운 작물을 시장에서는 500원, 1000원에 팔고 있다는 것을 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수확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키워 수확한 작물은 나와 가족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에 더 맛있고, 쉽게 버리지 않으며 아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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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가 수확하는 것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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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모이고 땀흘린
만큼 정을 나눌 수 있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 지인과
함께 오는 이들도 있지만 혼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박 씨는 "2011년부터 도시텃밭을
본격적으로 한 이후 매년 40~50 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받게 되는 에너지가
있다"며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고 말했다.

도시농부들이 에너지를 얻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작물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점을 느낀다고 한다.
여름에 더 덥고 겨울이면 더 추운 옥상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작물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겨우내 견디다 싹을
터서 나오는 새싹들을 보면서 삶의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미시간대학교 스티브 카플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을
체험하며 기억력을 회복 할 수 있다고
한다. 식물의 녹색이 휴식과 안정감을
주는 효과도 입증됐다.

미국의 대기 환경 전문가인 B. C 울버튼
박사는 사람이 식물 근처에 있거나 식물을
돌볼수록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3년 농촌진흥청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꽃과 꽃향기가
스트레스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책상 위에 꽃병을 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로 나눠
시험을 치르게 한 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측정했더니 꽃병을 두고 시험을
본 학생들의 수치가 250배 가량 낮았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도
움트게 만들었다. 마포구 구수동 한 빌딩
옥상에 자리 잡은 '파릇한 절믄이',
줄여서 '파절이'가 대표적이다.

약 50평의 옥상 텃밭을 일구는 파절이는
2013년 협동조합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토마토, 당근, 고구마 , 바질 등을
키운다. 매달 10,000원 이상의 회비만
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100여명의 회원이 있으며 운영진이
농작물이 시들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파절이는 매주 목요일 '목요밥상'이라는
모임을 열고 있다. 옥상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마련한 음식들을 나눠 먹는
행사다. 여기 참여한 회원들은 "방금 딴
재료로 만든 요리들은 소박하지만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과 비교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옥상 외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감상하는 '공중영화제'도 한다.

도시농부와 경제

도시텃밭은 실질적인 소득원이 될 수도 있다.
홍대텃밭다리의 박정자씨만 해도 텃밭에서 기른 쌈 채소와 허브를 인근 레스토랑과 카페에 납품한다.
마포구에서 생산된다고 해서 'Made in Mapo'를 따 'MIM'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도시텃밭이 일과 후의 활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도시텃밭의 효과를 주목한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사옥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텃밭을 일구는 등 도시농부를 자처하고 있다. 도시농부의 개념이 기업의 경제 활동에도 도입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대표적이다. 이곳 옥상 에서는 채소와 허브를 직접 재배해 직원들이 도심 속 농장과 같은 자연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수확한 작물들로 직원들에게 유기농 식사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열어 '더 가든(The Garden)'이라고 이름을 붙인 현대카드의 텃밭에서는 토마토, 오이, 호박, 파프리카, 가지, 고추, 블루베리, 콩 등은 물론 바질, 민트, 타임, 로즈마리, 레몬버베나, 체리세이지 등의 허브도 키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직원들이 옥상에서 휴식을 즐기면서 재배되고 있는 블루베리, 토마토 등을 따서 먹기도 하고 매일 아침 조리사들이 작물을 수확해 당일 직원식당 조식 메뉴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텃밭이 도시를 바꾼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도시농업이 가져온 변화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고층 빌딩이 즐비한 미국 뉴욕의 경우 5,000여개의 옥상정원이 조성 됐으며 이를 토대로 공동체 활동이 늘어 나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소통의 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캐나다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도시 내에 2,000여개의 텃밭을 조성해 시민들의 화합을 유도했다.
또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벽면 녹화, 옥상정원 조성을 통해 평균 30%이상의 냉방효율 증가가 보고되기도 했다.
소나기에 의한 도심홍수 완충작용과 미세먼지 등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를 흡착해 감소시키는 효과도 인정됐다.

도시농부가 가져온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확산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도시텃밭을 경험한 요리 사들은 과거보다 재료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한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 당근 하나를 써도 뿌리뿐만 아니라 잎까지 다 음식에 활용한다. 그 여파로 음식이 달라지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며 식생활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도시농부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농촌의 전업농과 우리 농산물에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관심이 높아질수록 농업은 활성화되고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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