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골칫거리' 낸드의 부활…삼성·SK, 체질 개선 '진검승부'

AI '학습'→'추론' 이동에 낸드 수요 급증
삼성·SK, 선단 공정 전환에 총력
SK하이닉스, 낸드 분기 매출 첫 10조 돌파
D램 이어 새로운 실적 '효자'로 부상

한동안 적자 늪에 빠져 반도체 업계의 '골칫거리'로 불리던 낸드플래시가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추론'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며 D램에 버금가는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다퉈 낸드 선단 공정 전환에 박차를 가하면서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D램을 넘어 낸드로 빠르게 옮겨붙는 모양새다.


삼성 '저지연·초고용량' vs SK '솔리다임 시너지'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는 차세대 낸드 솔루션 제품인 PCIe 6세대(Gen6)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양산 준비를 마쳤으며, 초기 샘플 평가에서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확보했다. PCIe 6세대는 이전 세대 대비 데이터 전송 속도가 2배가량 빨라,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추론 서버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올해 하반기 본격화될 차세대 AI 서버 및 데이터센터 수요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쿼드레벨셀(QLC) 9세대 V낸드.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쿼드레벨셀(QLC) 9세대 V낸드. 삼성전자


쿼드레벨셀(QLC) 영역에서도 9세대(V9)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3월 개발을 완료한 '1테라비트(Tb) QLC'를 바탕으로 '256TB 서버용 SSD' 등 초고용량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데이터 접근이 많은 AI 워크로드에서 데이터 이동 지연을 최소화하고 스토리지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역시 'AI 맞춤형 솔루션'으로의 체질 개선을 위해 낸드 선단 공정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은 이번 달 캐나다 밴쿠버에 'AI SSD 플랫폼 개발센터'를 신설했다. 이는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해 구형 공정을 최선단 공정으로 전환하려는 포석이다. SK하이닉스는 연내 국내 낸드 생산 물량의 50%를 321단(9세대) 최선단 공정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321단은 현존하는 가장 높은 층수의 낸드로, 데이터 집적도를 극대화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고지로 평가받는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321단 2Tb QLC 낸드'.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321단 2Tb QLC 낸드'. SK하이닉스


특히 SK하이닉스는 본사의 '고성능·고속 제품'과 솔리다임의 '고용량 QLC 기반 eSSD(기업용 SSD)'를 결합한 투트랙 전략을 통해 AI 데이터센터용 풀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세계 최초로 321단 기반 QLC 제품의 고객사 인증을 완료하며 시장 선점의 기반을 마련했다.


AI '추론'으로…낸드 몸값 7배 폭등

이 같은 낸드 회복세는 AI 산업의 무게 중심이 데이터를 가르치는 '학습'에서 완성된 모델로 결과를 도출하는 '추론' 단계로 넘어가는 패러다임 변화와 맞닿아 있다. 엔비디아 등 주요 AI 기업들이 추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고대역폭메모리(HBM)뿐만 아니라 낸드 기반 스토리지까지 확장해 저장하는 구조를 제안하면서 고성능 스토리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추론 과정에서 대규모 중간 데이터를 임시 저장하고 빠르게 불러오는 'KV 캐시' 기술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전력 효율이 높고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고성능 eSSD가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낸드 가격이 치솟고 있다.

실제 가격 지표는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업용 SSD 계약가격은 전 분기 대비 48~53% 상승할 것으로 분석된다. 1분기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50% 안팎의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표준 제품가는 불과 1년 사이 7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에 더해 주요 업체들이 HBM 생산을 위해 D램 라인을 할당하면서 낸드 생산 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풍선 효과'까지 더해져 공급 부족 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적어도 2027년까지는 현재의 타이트한 수급 상황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이 싱가포르에 240억달러 규모의 낸드 팹(공장) 투자를 발표하고 SK하이닉스가 다롄 2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지만, 실제 양산까지는 상당한 리드타임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업체 역시 중국 내수 및 범용 제품 중심에 국한돼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주요 메모리 업체의 실적 지표도 낸드 성장세를 반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 1분기 낸드 매출은 11조 410억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48% 급증한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1분기 낸드 영업이익률을 53% 수준으로 추정하며, 낸드가 메모리 반도체의 새로운 '효자'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시장의 중심이 HBM 등 D램 위주인 것은 맞으나, 낸드의 수익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며 "이제 업체들의 경쟁은 단순한 물량 확대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AI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느냐는 '체질 개선'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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