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 속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증폭되면서 해외건설 수주에 비상등이 켜졌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시작으로 건설업계 도미노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해외건설 시장 공략의 암초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주도의 해외건설 수주 지원단인 '원팀코리아'의 활동도 잠잠한 가운데 올해 5년 연속 300억달러 수주고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말 GS건설 의 무보증사채(A+)와 기업어음(A2+) 등급을 각각 A, A2로 하향 조정했다. 동부건설 의 기업어음과 전자단기사채 등급도 종전 A3+에서 A3로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GS건설(A+), 롯데건설(A+), HDC현대산업개발 (A), 신세계건설 (A) 등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건설사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당장 걱정할 수준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나 내부에서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국내에서 자금 조달력을 볼 때 신용등급이 중요한 것처럼 해외건설 수주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국 건설사들이 이를 빌미로 방해 공작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권의 건설업 회생 프로그램인 'PF 대주단 협의체'에 가입한 건설사들 신용등급이 떨어져 해외 발주처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특히 중소·중견 건설사는 해외건설 수주에 있어 신용 평가에 의한 보증서 발급이 쉽지 않은데, 신용등급까지 떨어지면 사실상 수주가 불가능할 수 있다. 과거 워크아웃을 겪었던 B건설사 관계자는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는 방식 등에 차이가 있지만, 해외에서는 같게 본다"며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존 수주는 어떻게든 이어나가더라도 신규 수주는 제약을 받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도 몸을 사리고 있다. 최근 삼성물산 과 현대건설 , 대우건설 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휴양도시 제다에 추진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 '제다타워' 공사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다타워는 지상 168층, 세계에서 처음으로 1㎞ 넘는 1008m 높이로 지어진다. 추정 공사비는 12억3000만달러(약 1조6500억원)에 달한다.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초고층 빌딩 시공 경쟁력을 입증한 국내 건설사들이 '최고층'이라는 상징성을 마다한 것은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C건설사 관계자는 "제다타워는 2017년 공사가 중단돼 공백기가 긴 만큼 리스크 부담이 크다"며 "중동 사업 특성상 투자 자금을 일으켜야 하는데 부동산 PF 리스크가 심화한 현 상황에 적합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정부도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내 급한 불부터 끄는 모양새다. 연초부터 국토교통부 장관을 단장으로 원팀코리아를 꾸려 중동지역 3개 국가를 방문했던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원팀코리아 해외 일정이 보고되거나 잡힌 게 없다"고 말했다.
원팀코리아는 지난해 1월 24~26일 사우디와 이라크, 카타르 방문을 시작으로 3월 인도네시아를 찾았고, 10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동에 직접 들르기도 했다. 곳곳을 누빈 결과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333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7.5% 늘어난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해외건설 수주 목표액을 400억달러로 높여 잡았다. 사우디 네옴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과 이라크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도 국내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해외건설 수주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초기 자금이 필요한 해외 사업장들이 많아졌고, 아직 태영건설발 워크아웃 불씨가 꺼지지 않아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D건설사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총선 이후에 건설사 워크아웃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며 "더 확산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건설사가 개별적으로 자금력이 막강한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원팀코리아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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