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양그룹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사태로 인해 현재현 회장 등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너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구조조정작업을 지연시키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대한전선그룹 창업주인 고(故) 설경동 회장의 손자인 설 사장은 선친인 설원량 회장이 2004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뜬 직후 대한전선에 입사했다. 2006년 경영전략실 차장, 2007년 부장을 거쳐 2008년 임원(전력사업부 해외영업부문 상무보)을 달았다. 이어 2009년 10월 경영기획부문 전무로 승진해 3개월 뒤인 2010년 1월 부사장을 거쳐 그해 12월 부회장에 올랐다. 만 29세의 나이로 재계 최연소 부회장에 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초 스스로 직급을 사장으로 낮췄다. 어린 나이에 부회장이라는 직위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대한전선은 과거 임종욱 사장 등 전문경영인 시절에 이뤄진 무분별한 투자와 경기침체에 따른 자산부실화로 2009년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자율협약)을 맺었다. 설 사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 최전방에 나서 고군분투해왔다. 하지만 지속된 경기침체에 따른 영업이익 축소 및 구조조정 대상인 비영업용 자산을 매각할수록 손실 규모가 커지는 등 경영지표가 악화됐다. 이에 따른 경영상의 책임을 지고 설 사장은 경영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의 의지로 인해 오너 및 경영진이 물러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오너가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설 사장은 경영권 포기를 결정한 뒤 전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설 사장은 이메일에서 "선대부터 50여년간 일궈 온 회사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제가 떠나더라도 임직원 여러분께서는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보여준 역량과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해 줄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동양그룹 법정관리 사태는 설 사장의 용단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동양그룹 오너인 현재현 회장이 주요 사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구조조정작업이 지연되면서 해체 수순에 들어간 동양그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의지를 설 사장이 경영권 포기로 표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