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물류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에 투자한 사모펀드(PEF)의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Put Option)을 받아주면서, SK그룹이 주식매도청구권(콜옵션·Call Option)을 행사하지 않아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11번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1번가에 국민연금 자금이 3800억원이나 투입된 데다, 오는 10월 말 SK의 콜옵션 행사 기간이 2년 만에 다시 도래하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롯데지주 는 택배와 국제특송 사업을 하는 물류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의 2대 주주인 엘엘에이치유한회사의 풋옵션 행사에 따라 지분을 되산다고 공시했다. 앞서 2017년 PEF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가 특수목적법인(SPC) 엘엘에이치유한회사를 통해 롯데글로벌로지스에 2790억원을 투자해 매입한 지분 21.87%를, 최대 주주인 롯데지주(지분율 46.04%)와 4대 주주인 호텔롯데(10.87%)가 총 3800억원을 투입해 다시 사들이는 것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유가증권시장 상장(IPO) 철회공시를 한 지 불과 10일 만에 이 같은 발표가 나오자 자본시장은 '이례적'이란 반응이 많았다.
통상 대규모 주식매매계약에는 투자자들이 IPO 등 엑시트(Exit) 기회가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주주 간 계약서에 풋옵션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하지만 실제 풋옵션 행사 등을 통해 투자자들이 엑시트한 사례는 거의 보기 힘들다. 교보생명 건에서 보듯 주주 간에 지루한 법적 분쟁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롯데글로벌로지스처럼 이른 시일 내에 주주 간 합의를 통해 결정이 이뤄졌다는 게 상당히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다.
롯데그룹이 이례적으로 분쟁없이 풋옵션을 받자 자본시장에서는 온라인 유통업체 11번가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2018년 PEF H&Q코리아와 국민연금, MG새마을금고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SPC 나일홀딩스유한회사를 통해 11번가 지분 18.18%를 5000억원을 주고 사들였다.
당시 최대 주주 SK스퀘어 (지분율 80.26%)와 나일홀딩스는 주주 간 계약서에 '5년 내 IPO에 실패하면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행사해 컨소시엄 지분을 되사가거나 SK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면 컨소시엄이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 얼롱·Drag Along)을 행사해 매각 절차를 시작하는' 콜 앤드 드래그 옵션(Call and Drag Along Option) 조항을 넣었다. 당연히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풋옵션을 넣는 게 안전했지만, 회계상 풋옵션이 SK스퀘어 부채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대주주 부담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콜 앤드 드래그 옵션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1번가 실적이 계속 악화해 IPO에 실패했고, 2023년 10월 말 첫 번째 콜옵션 행사 기한이 도래했다. 시장 예상과 달리 당시 SK스퀘어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해 충격을 줬다. 이후 재무적 투자자들이 드래그 어롱 옵션을 행사해 11번가의 매각 절차가 시작됐다. SK스퀘어가 11번가 경영진을 교체하는 등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티몬, 위메프 사태 등으로 온라인 유통업 자체에 대한 불신마저 팽배해져 매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결국 2년마다 다시 돌아오는 SK스퀘어의 콜옵션 행사 기한이 오는 10월 말 도래할 때까지 매각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에 롯데그룹이 주주 간 계약을 깔끔하게 이행하면서 SK그룹 결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IB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사태로 국민연금의 투자 회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져 이번에는 SK그룹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컨소시엄 전체 투자금 5000억원 가운데 3800억원이 국민연금 자금으로 알려져 있다. H&Q코리아가 11번가에 투자한 3호 블라인드펀드는 11번가 가치를 제로(0)로 하고도 내부수익률(IRR)이 22%로 매우 높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회수가 절실한 투자인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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