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 HB인베스트먼트 가 약속한 기간 내 기업공개(IPO)에 성공하지 못한 스타트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계약서에 IPO 불발에 대한 스타트업의 책임이 명시된 것은 맞지만, 계약 취지, 경영 노력 및 시장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배상금 요구는 벤처투자의 본질과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이승원)는 HB인베스트먼트 측이 코리아크래프트비어와 그 대표 등을 상대로 낸 5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HB인베스트먼트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비용도 HB인베스트먼트 측이 전부 부담토록 했다.
앞서 HB인베스트먼트는 'HB성장지원M&A(인수합병)펀드'를 통해 2016년 10월 코리아크래프트비어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펀드의 위탁운용사(GP)로서 출자자(LP)들의 출자금 일부를 더해 총 50억원가량을 코리아크래프트비어에 투자한 것이다. 계약에 따르면, 코리아크래프트비어는 2022년 12월31일까지 IPO를 해야 했다. 기한 내 이행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과 연 복리 20%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규정도 계약서에 담겼다.
하지만 코리아크래프트비어는 약속한 기한까지 상장하지 못했고, HB인베스트먼트는 2023년 1월 이번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선정당사자(민사 공동소송에서 대표로 참여하는 당사자)로서 소송을 제기한 HB인베스트먼트는 "원고와 LP들에 펀드 출자 비율에 따라 배상금 각 1억6250만~21억1400만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1심은 HB인베스트먼트의 청구를 기각했다. 계약서 내용만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은 코리아크래프트비어에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단순히 상장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우선 재판부는 IPO 의무를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결과채무란 특정한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의무로, 그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수단채무는 결과 달성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할 의무를 의미하고, 최선을 다했어도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재판부는 "IPO는 회사의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이나 외부 환경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며 "코리아크래프트비어가 상장하지 못한 이유는 수제맥주 시장의 침체와 같은 외부적 요인 때문이다. 상장을 회피하거나 의도적으로 관련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코리아크래프트비어는 2021년 말 기준으로 일부 상장 요건을 충족했지만, 이듬해 수제맥주 업계의 전반적인 매출 하락 때문에 '질적 요건'을 통과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재판부는 "IPO 의무 위반을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부여해 고액의 이자를 내도록 하는 것은 HB인베스트먼트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한 계약"이라며 "상호협의 하에 성공적인 IPO를 성공시켜 펀드 조합과 코리아크래프트비어 측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던 이 사건 계약의 의도, 모험자본의 투자인 벤처투자의 본질 및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적 측면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HB인베스트먼트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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