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내 투자 흐름이 다시 바뀌고 있다. AI가 학습 단계를 넘어 추론·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면서, GPU(그래픽처리장치)에 집중됐던 수요가 CPU(중앙처리장치)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텔의 1분기 실적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계기로 CPU 기업 주가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인텔은 데이터센터 및 AI(DCAI) 매출이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덩달아 주가도 뛰었다. 인텔은 2024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에서 25년 만에 제외됐지만, 이후 CPU 수요 기대감 속에 올해 들어 약 170% 상승했다. 4월 한달간은 주가 상승률이 119%에 달했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DCAI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22% 성장하면서 CPU 역할 확대와 수요 성장이 확인됐다"며 "AI가 학습에서 추론·에이전틱 AI로 고도화되면서 작업을 조율하는 CPU 역할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AI 투자는 학습 중심 구조에서 GPU, HBM(고대역폭메모리), 고속 네트워크 확보가 핵심이었지만, 최근 서비스 단계로 넘어가면서 모델 선택·데이터 조회·툴 호출 등 연산 외 작업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전틱 AI에서는 '판단→도구 선택→실행→검증' 과정이 반복되며 작업을 조율하는 CPU 중요성이 커진다. 강재구 하나증권 연구원은 "추론 시장에서 CPU는 AI 시스템의 '교통정리' 역할을 한다"며 "유휴 GPU가 없도록 데이터를 공급해 효율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박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CPU가 전체 작업을 조율하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구조 역시 바뀌고 있다. CPU와 GPU 비율은 기존 1대4~1대8에서 에이전틱 AI 환경에서는 1대1~1대2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요와 함께 공급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CPU는 GPU보다 생산 구조상 단기 증설이 어렵기 때문에 공급 확대 과정에서도 병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버용 CPU는 TSMC 선단 공정과 CoWoS·SoIC 등 여러 칩을 하나로 묶는 첨단 패키징에 의존하는데, 해당 생산능력은 이미 GPU와 스마트폰용 반도체 수요로 포화 상태다.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CPU 리드타임(납기 기간)이 기존 1~2주에서 8~12주로 늘었고 일부 제품은 6개월 이상 대기 사례도 있다"며 "인텔과 AMD가 서버 CPU 가격을 약 10~15% 인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준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연산 패러다임 변화로 CPU가 구조적 공급 부족 국면에 진입했다"며 "CPU와 GPU 비율이 1대1까지 좁혀지며 가격 인상 흐름도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CPU를 넘어 기판, 패키징, 테스트 등 후공정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 연구원은 "CPU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수혜가 곧바로 인텔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며 "전통 데이터센터의 AI 전환 과정에선 AMD가 더 유리할 것이고, 대규모 AI 추론 데이터센터에서는 Arm 기반 CPU가 더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엔비디아 CPU는 Arm 기반 설계를 채택하고 있고, 하이퍼스케일러도 자체 Arm 기반 CPU를 확대하고 있다"며 "AI 추론이 클라우드 내부에서 커질수록 일부 x86 CPU 수요는 Arm 기반으로 흡수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 연구원은 "CPU 공급 부족은 CPU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메모리,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기판, 패키징, 테스트 등으로 수혜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서버용 CPU는 고사양 FC-BGA 기판과 첨단 패키징 기술이 필수적이며, CPU 성능을 뒷받침하기 위한 메모리 대역폭 확보도 동시에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국내 투자 관점에선 CPU 설계 기업보다 밸류체인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FC-BGA 기판을 생산하는 삼성전기 와 대덕전자 , 그리고 후공정·테스트 관련 기업들이 주요 수혜군으로 거론된다. 기판 업체에도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고의영 iM증권 연구원은 심텍에 대해 "에이전틱 AI 부각에 따른 CPU 수요 증가와 엔비디아 베라 CPU 랙 출시 영향으로 SOCAMM(소캠) 관련 매출 업사이드가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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