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방사성의약품 원료 유통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국내 최신 암 치료 비용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의존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자체 생산 사업은 시설 허가에 필요한 공사비 20억원이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1년째 멈춰 있는 실정이다.
21일 한국원자력의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1억2000만원이었던 국내 알파핵종 표적치료의 4회 기준 원재료 비용은 현재 1억6000만원으로 약 30% 뛰어올랐다. 이 치료법은 기존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쓰이는데 치료 한 번에 드는 방사성동위원소의 가격이 약 3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1000만원 가량 치솟았다.
알파핵종 표적치료는 알파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 악티늄-225를 암세포에 결합시켜 파괴하는 차세대 방사성의약품 치료법이다. 거세저항성 전립선암과 말기 신경내분비종양 환자에겐 유일한 치료 선택지다. 국내에선 담당 의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동정적 치료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악티늄-225 생산 시설에 설치된 특수 글로브 박스. 방사성 물질인 라듐-226을 안전하게 다루면서 악티늄을 분리·정제하기 위한 장치로 양쪽에서 동시에 작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박정연 기자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러·우 전쟁이 있다. 악티늄 국제 가격은 2025년 상반기 메가베크렐(MBq)당 680유로(약 117만원)였으나 전쟁이 장기화한 지난해 하반기 840유로(약 145만원)로 올랐다. 악티늄-225는 정제 생산에 고도의 원자력 시설이 필요해 러시아가 사실상 전 세계 최대 공급국 역할을 해왔지만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가 강화되면서 공급 루트가 사실상 차단됐다.
특히 일부 러시아 금융기관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되면서 대금 지급이 어려워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는 "러시아에서 공급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달러로 결제할 방법이 없어 거래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악티늄 생산에 사용되는 니켈-64도 러·우 전쟁 전 1g당 약 6000만원에서 현재 1억원을 넘어섰다.
원료 수급 불안정은 환자의 치료 적기를 놓치게 만들고 있다. 악티늄-225는 반감기가 약 10일로 짧아 생산 즉시 투여가 필요하지만 공급사가 납기 직전에 물량 부족을 통보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치료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알파핵종 치료 대상 환자 대부분은 이미 병기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치료 공백이 길어질수록 치명적이다. 치료를 기다리는 사이 상태가 악화돼 치료 기회를 놓치는 사례도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의존 구조를 끊기 위해 추진된 악티늄 자체 생산 시설은 생산 허가를 받고도 시설 허가를 받지 못해 1년째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지난해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악티늄-225 생산 허가를 내줬지만 같은 시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방사선 차폐 설비 미비를 이유로 시설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원자력의학원의 생산 방식은 라듐-226에 양성자빔을 쏘아 악티늄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방사선 차단을 위한 약 70t 규모의 납 차폐 공사와 라듐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가스 외부 유출 방지를 위한 배기 시설, 환경 모니터링 장비까지 포함하면 약 20억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이교철 한국원자력의학원 RI응용부장은 "생산 허가는 받았지만 시설 허가를 받지 못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허가"라며 "구축해 놓은 분리·정제 장비도 3년째 가동하지 못하면서 일부 장비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이 신청한 차폐 공사비는 올해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자체 생산 설비가 완성되면 매달 수십 명분의 치료 원료를 자체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가동 시 1회 생산으로 성인 환자 2~3명의 1회 치료분에 해당하는 1~3밀리큐리(mCi)를 확보할 수 있다. 향후 고체 표적 기술로 전환하면 수십 밀리큐리 단위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동위원소 공급의 안정성은 차세대 방사성의약품 개발이라는 산업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손꼽힌다. 황선관 SK바이오팜 부사장은 지난해 '의료용 동위원소 자립 및 방사성의약품 개발 촉진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기초 연구개발에서도 악티늄이 없어 활발하게 연구를 못 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들어오면 반감기 때문에 대형 제약사와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는 만큼 안정적인 국내 공급 체계가 갖춰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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