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SPC, 더 이상 노동자의 등을 떠밀어선 안 된다

[기자수첩]SPC, 더 이상 노동자의 등을 떠밀어선 안 된다


지난달 5일 SPC그룹 계열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김모씨(56·남)는 작업 환경을 얘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제조업에 비해 40대 이상 여성의 비중이 높은 이 공장 노동자들의 표정에는 피곤함, 무력감, 패배감이 묻어 있었다. 2조2교대,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중노동보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무거웠을 터다.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요. '어디 가서 우리가 월 300만원 받냐.'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죠."


SPC에서 지난 3년간 3명의 여성이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참고기사: 멈추지 않는 기계가 삼킨 생명들). "혹시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한 것 아닐까?" 안타까운 사고 앞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한 치의 의심조차 없애기 위해 세밀하게 분석했다. 3건의 사고와 관련된 기록과 노동자의 증언, 공학자, 의학 전문가 등을 통해 이들은 신체를 짓이기는 기계에서 작업했고 안전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탓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위험한 기계와 미비한 안전장치는 빵 공장의 반복된 기계 끼임 사망 사고의 핵심 원인이었다. 이토록 허술하게 안전 관리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기계 안으로 유도한 것은 기계에 문제가 생겨도 작업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와 과도하면서도 집약적인 업무량, 생산량에 대한 압박감이다. 이곳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작업반장도 기계를 세울 수는 없다"고 증언했다. 결국 감당 못할 만큼 몰리는 업무량이 노동자들을 기계 속으로 등 떠민 셈이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 방문해 장시간 및 야간 근로 문제를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SPC 관계자를 향해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라고 말하며 대중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산업재해 문제에 대한 적극 행보는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 대통령 역시 철인이 되지 않고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작업량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짚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다녀가고 SPC 공장에 환영보다 불안이 먼저 깃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작업량이 더 몰리면 어떡할까 걱정이 앞선 셈이다.


이 대통령의 불호령 이후 SPC는 생산직 8시간 초과 야근 폐지 등 장시간 야간 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작업중지권 등 과도한 업무량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는 대해 구체적 답변 없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대로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인간보다 돈, 안전보다는 생산량을 중시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관련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이제는 이들을 등 떠밀 공간도 없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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