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닦은 정주영, 외형·내실 다진 정몽구, 명차 도약 정의선

1억대 생산 현대차, 선대 경영진 업적 보니
정의선, 고가·고성능車로 브랜드 가치 견인

현대차 가 30일 누적 생산 1억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1억1번째 생산한 차량 아이오닉5 출차 세리머니를 했다. 이날 오전 회사 유튜브 계정에 공개한 영상의 제목은 ‘1억 그리고 1’. 1억보다 1억1에 방점을 찍은 건 그간 쌓은 업적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더 살뜰히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경영진의 선구안이 큰 역할을 했다. 정 회장의 조부인 정주영 선대회장은 "한 나라 국토를 인체에 비유하면 도로는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그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다"며 1967년 회사를 차렸다. 정 회장은 한국전쟁 전에 차량 정비소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듬해 울산에 조립공장을 짓고 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설립 1년도 안 된 회사가 공장을 짓고 조립 생산을 시작한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울산시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인공지능(AI)으로 복원된 현대 창업주 정주영 선대회장의 육성이 사진과 함께 나오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울산시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인공지능(AI)으로 복원된 현대 창업주 정주영 선대회장의 육성이 사진과 함께 나오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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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내 독자개발 포니 역시 정주영 회장의 결단에서 시작했다. 비포장도로 위주였던 탓에 고장이 잦았는데, 문제해결을 위해 조사했던 포드 쪽 조사관은 험한 길에서 운행을 자제하라는 식의 해법을 내놨다. 정주영 회장은 조립생산의 한계를 느끼고 포드와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주요 부품 국산화를 둘러싸고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결렬됐다. 현대차는 고유모델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1975년 포니를 출시한 배경이다. 프로젝트 착수 3년여 만에 시장에 나왔다. 포니는 국내 출시 이듬해 에콰도르에 수출되며 첫 국산차 해외판매 기록도 썼다. 1986년 자동차 본고장 미국에 처음 수출한 국산차 역시 포니 엑셀 모델이었다.


1999년 취임한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경영’으로 자동차 기업의 기본기를 다졌다. 2000년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양재동에 본사를 차렸고 이듬해 본사에 품질상황실을 설치했다. 전 세계 각지에서 고객의 불만사항을 24시간 실시간으로 접수했다. 국내외 모든 공장에 전수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객에게 인정받으려면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2016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당시 회장이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을 방문해 자동차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그룹]

2016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당시 회장이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을 방문해 자동차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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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 생산거점을 두고 현지화를 적극 추진한 것도 정몽구 회장 시절이다. 현대차 해외 공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튀르키예 공장이 1997년, 인도 첸나이공장이 1998년이다. 정몽구 회장 재임 시절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공장(2005년), 체코공장(2009년), 브라질공장(2012년)을 잇따라 가동하며 생산능력을 끌어올렸다. 20세기 말, 21세기 초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인수합병이 횡행하며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던 기류가 팽배했다. 대형 완성차 업체 5곳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한 이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는 전 세계 10위권에 머물렀다.


정의선 회장은 선대 경영진의 업적을 기반으로 사업을 가다듬는 동시에 자동차 너머의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2005년 기아 사장으로 있던 당시 도입한 디자인 경영이나 2015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고가 브랜드 제네시스를 내놓은 걸 정 회장의 업적으로 본다. 제네시스 출범 때만 해도 당시 유럽이나 미국의 유서 깊은 브랜드나 대중차로 업력을 쌓은 일본 업체의 프리미엄 전략에 대항마로 내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제네시스는 출범 7년 만인 2023년 8월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넘어서며 우려를 씻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8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N페스티벌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8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N페스티벌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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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차종 개발도 독려했다. BMW에서 고성능 차량 개발을 담당했던 알버트 비어만을 모셔왔다. 당시 독일에서도 비어만의 한국행을 두고 반향이 컸다.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에 잇따라 참가하며 기술력을 가다듬었다. 글로벌 유수 자동차 회사가 참여하는 모터스포츠 대회는 동력성능이나 내구성을 검증하기 좋은 무대로 꼽힌다.


지난해 출시한 현대차 아이오닉5N은 전동화 시대에 고성능차가 지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자동차 산업은 상대적으로 업력이 짧은 브랜드가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데 전동화 전환과 맞물리면서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았다. 궁극적인 친환경차로 꼽히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역시 대형 상용차나 승용차로서는 첫 양산형 모델을 내놓으면서 미래 방향성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로봇·미래항공교통(AAM)·이동수단 서비스 등 기존 자동차 업종을 넘어 ‘인류를 위한 진보’를 명목으로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점도 주목받는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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